아시아에서의 위안부 재현의 과거와 현재 – [작품 해설] 오키나와의 할머니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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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할머니 Okinawa no Harumoni

야마타니 테츠오 Yamatani Tetsuo
Japan l 1979 l 86min l Korean Premiere
  • 일시: 9월 25일(일) 12:30 <오키나와의 할머니> 상영 후
  • 장소: 메가박스 백석 8관
  • 강연: 윤명숙 (상해사범대 중국‘위안부’문제 연구센터 객원 연구원,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저자

국가가 조직한 위안부 바로보기

위안부 문제는 제가 연구주제로 삼는 것이긴 한데, 이 얘기를 하면 다들 분위기가 가라앉아요. 영화 상영 중에도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리던데. 여러분은 위안부라고 하는 말을 90년대 이후에 국가 책임과 같이 들으셨을 거에요. 군과 관련이 있고 군인이 이용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국가가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었다는 건 알려지기 전이었는데 그때의 인식이 이 영화에도 들어가 있어요. 요시다 세이지라는 사람이 쓴 책을 보면 군인들이 공장에서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저는 이 사람이 아무 것도 겪지 않았던 상황에서 이런 책을 썼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를테면 제가 조사를 하던 중에 전라도 쪽에 있는 방직공장에 트럭과 사람들이 들어오고, 같이 일하는 언니가 돈 많이 버는 데로 간다고 하니까 다른 여자아이들도 따라 나섰다고 하거든요. 이게 당시에 전혀 없던 얘기가 아니고 분명히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자료로 남아있지 않으니까 검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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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할머니> 작품 해설 윤명숙

 

<빨간 기와집>, 배봉기의 인생

배봉기씨에 관해 가와다 후미코라는 일본 저널리스트가 5년에 걸쳐 쓴 책이 있어요. 한국에서도 ‘빨간 기와집’ 이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어있고요. 그분의 책을 빌려 얘기하면 배봉기씨는 어릴 때 결혼한 뒤 집을 도망쳐 나와서 전전하다가 흥남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질산 비료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군인이나 일본인이 많았는데, 이런 공장들이 있으면 돈을 보고 몰려오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소개인이 ‘이불 같은 거 다 버리고 가도된다. 누워만 있으면 과일이 입으로 떨어지는 돈 많은 곳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성들이 70-80년대에 비하면 많은 분야에 진출했지만 그 시대에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지극히 제한적이었어요. 특히 어린 아이들. 그러니까 결국 일할 수 있는 게 남의 집 살이나 접객 같은 것 밖에 없었고,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공장에 취직시켜줄게’ 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대부분 이 일은 미혼인 10대를 대상으로 했었지만, 10대의 순결한 소녀만 있던 건 아니에요. 이 대표적인 예가 배봉기씨 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세월을 짐작 해볼 수 있죠.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해도 입으로 과일이 떨어진다는 말을 믿고 싶을 만큼 험한 세월을 살았을 것 이라 짐작할 수 있는 거 에요.

 

왜 오키나와인가

여관은 꽤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도 나오는 곳인데 이곳이 중간 집합 인거죠. 배봉기씨가 오키나와에서 계시던 곳이 오키나와를 5등분했다고 할 때 4번째 정도 되는 위치였거든요. 그 위 바다 쪽에 자마미 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곳에 특공대가 있었어요. 특공대 군인들이 도카시키지마에 있는 위안소를 이용했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는 대만이나 조선처럼 자신들이 식민지였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일본에 편입되게 된 과정도 식민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속 택시기사님이 하는 말이 ‘조선 여자들이 일본군을 상대하다가 패전 뒤에 미군을 상대했다.’고 말씀하시죠.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알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위안부가 90년대 이후에 국가 범죄고, 피해자 들이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고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내 팔자가 원래 그랬어.’ 라는 말을 달고 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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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할머니> 야마타니 테츠오

 

몸이 기억하는 치욕의 시절

영화를 보다보면 고향에 대한 질문 같은 것에 침묵하시거나 다른 얘기를 하시는 지점이 있어요. 7살 무렵에 대한 질문이나 위안소 생활을 직접적으로 여쭤보면 대답을 안 하세요. 영화에서 할머니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는데 감독님은 할머니가 위안부를 겪으셨던 게 몸으로 왔다고 표현을 하세요.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잊기 위해 노력 했던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 시절의 얘기를 다시 하는 게 힘드셨던 거죠. 그리고 오키나와가 일본에 본토복귀를 하는 과정 속에서 행정권과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고 불법체류자에 대한 검거를 하게 되요. 배봉기씨는 식민지 때 왔지만 일본인은 아니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로 분류되어 추방되게 됩니다. 이 분은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알고 지내던 음식점주인에게 말하게 되면서 위안부라는 것이 신문에 보도되어 드러나게 되요.

 

우리가 외면했던 정신대, 위안부

용어는 다들 알고 계실지는 모르지만 두 가지 종류의 정신대가 있었는데, 여자근로정신대라고 노동으로 동원된 게 있었어요. 여자근로정신대 라는 이름으로는 43년경 부터 동원되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안부가 성적 착취를 당한 것이고요. 옛날에는 여자는 밖으로 내몰리면 기스를 당한다고 했어요. 이 말이 참 그렇지만 여자가 순결을 잃는다는 거 에요. 순결은 여자에게 있어서 인간다움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던 시대였던 거죠. 위안부문제를 다룰 때 이것이 강제냐 아니냐가 쟁점이 되어왔고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의 인식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요. 배봉기씨가 70년대에 왜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분은 어리고 순결한 처녀가 아니었던 거 에요. 그런 것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스스로 용기를 가지고 피해자였다고 고백하셨던 김학순씨는 제 인생에 굉장히 큰 전환점이 되어주셨어요. 그런데 김학순씨가 왜 그렇게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를 예전엔 몰랐지만 최근에 생각해 보면 그분은 중국에서 군인에 의해서 끌려갔고, 소위 말하는 순결한 처녀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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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궈 커

 

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22>도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민족문제도 있고 여성문제도 있고 모든 게 복합적으로 합쳐져 있어요. 전체규모도 명단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결한 처녀가 아닌 여성들도 있었다는 것. 그들도 똑같이 피해자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상영하는 위안부 관련 8편 모두 연관 있는 영화이고 그 중에서도 추천 드리자면 ‘22’ 라는 중국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궈 커 상영작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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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홍보마케팅팀 자원활동가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

김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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