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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9월 26일(월) 19:00 <일본해방전선, 산리즈카의 여름> 상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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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메가박스 백석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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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이 영화에서 그려진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었던 사람들이자 우리 이웃일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에 한 여성분이 ‘단결‘이라는 것이 참 좋다고 말씀하잖아요. 우리는 종종 단결을 생각할 때 일종의 의무처럼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 닥쳐서 할 수 없이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르게 보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도 ‘단결이라는 것이 참 좋은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후이지 다케시 [다큐초이스 토크] 중

일본해방전선, 산리즈카의 여름 Summer in Narita
오가와 신스케 Ogawa Shinsuke
Japanㅣ1968ㅣ108min
과거의 역사 혹은 지금
<일본해방전선 산리즈카의 여름>은 50년이 된 영화입니다.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니에요. 요즘 뉴스를 보니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던데요, 결국에는 성주골프장으로 옮기겠다 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사실은 여기서 그려지는 산리즈카 라는 곳은 우리가 잘 아는 60년대 초반의 나리타공항에 관한 이야기고 건설부지가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공항건설 발표 후에 주민들이 반발하여 갑자기 결정된 곳이 바로 산리즈카입니다. 성주골프장에 사드를 배치 하는 문제처럼 산리즈카도 3분의 1이 국유지로 확보 가능했던 곳이기 때문에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볼 수 있어요. 공항 건설은 오래된 마을 주민들이 살았던 곳을 포함하여 일본 패전 후에 많은 개척민들이 살고 있던 지역의 땅을 겨냥했습니다. 정부는 개척민들은 당연히 사는 곳에 대한 강한 애착과 마을 공동체 의식도 강하지 않을 것이니 그 사람들에게 정당한 돈을 주면 떠날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였죠.
현재 성주에서도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을 하고 있잖아요. 정부는 조금이라도 저항이 덜 한 곳을 찾는 것이죠, 50년전에 그랬던 것 처럼 지금 현재도 무엇을 강행하려고 할 때 약해보는 곳을 먼저 찾습니다. 만약에 정부가 생각한 대로라면 쉽게 돈을 주면 떠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산리즈카 주민들은 아주 거세게 저항을 했고 <산리즈카에 살다: 나리타 이야기>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리즈카 투쟁은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리타 공항 옆쪽으로 가면 저항하고 있는 농민들이 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나리타 공항은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공항으로 존재하고 있죠.
왜 농민들은 그렇게 까지 반발 할 수 있었을까요?
보통 지역투쟁은 강한 뿌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정부도 그러한 기준으로 산리즈카 주변에 오래된 마을의 땅을 뺏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되도록이면 오래 된 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은 피했어요. 그렇지만 실제로 정부의 생각은 맞지 않았어요. 우리가 ‘저항’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저항의 근거는 과거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수박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볼 수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주민들 입장에서는 농사를 했던 세월과 매일매일 키우고 있는 농작물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는 것이죠. 실제 산리즈카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만주 이민자들로 만주로 이주 했다가 일본이 패전한 후 다시 일본에 돌아와 갈 곳이 없어 작은 마을에 개척민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많아요. 사실 이주한 만주에서도 개척민이였지만 사람들은 이 곳 산리즈카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개척’을 해봤다 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어렵게 땅을 일구어 개척을 했는데 하루 아침에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는데요, 거기에는 당연한 분노라는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죠.
투쟁의 과정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특히 오가와 신스케의 영화가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쟁의 과정 속에서 마을 공동체라는 것이 새로 생기게 되는데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전통이 없는 지역에서 투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이 점은 다른 작품 <제2요새의 사람들> <헤타 마을>에서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강하게 싸울 수 있는 공동체’ 라는 것이 생길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요인들을 들 수 있는데요. 한 가지는 베트남전입니다. 사실은 이 지역의 새로운 공항 건설은 베트남 전쟁과 연결되어 있어요. 베트남전에서 일본은 아주 중요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는데 전쟁에서 파괴된 탱크 혹은 전투기를 일본에서 수리를 했고 군인들도 일본으로 휴가를 왔어요. 그런 면에서 일본으로 공수해야하는 상황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공항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서 반드시 60년대 중반에는 공항을 건설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죠.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4천미터 활주로를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던 것은 군사용 로 쓰는 활주로 건설에 반대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 뜻은 산리즈카의 공항은 군용기도 쓸 수 있는 공항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죠. 산리즈카 공항 건설이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에 관여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당시 베트남에서 싸우고 있는 농민들과 산리즈카의 농민들을 동일시하면서 편협적인 시선이 농민해방전선과 맞물려 이 영화의 제목인 ‘일본해방전선’도 바로 그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무장. 청년과 여성의 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힘으로 추동되어 이 운동이 계속 전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는 바로 청년과 여성이죠. 이 영화의 주제 중의 하나가 ‘무장’인데요. 무장이 왜 필요한지에 계속해서 청년과 여성을 포함한 농민들이 이야기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가와 신스케 영화의 특징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어요.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식으로 맞서야할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죠. 무장을 하고 온 전경들은 말로는 불법 행위라 하면서 그들도 마지막에 의지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그렇다면 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인가? 흔히 무장이라고 하면 말이 필요 없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쉽게 생각하는데 영화에서는 ‘무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말이 많아지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과연 ‘무장’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왜 우리는 ‘무장’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새로운 주체가 생산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아주 중요하죠.
팔레스타인에서 무장한 이스라엘 단체들에게 돌을 던지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안잖아요? 몇 천개를 던져도 이길 수 없죠. 그래도 팔레스타인 청년들과 소년들은 끊임없이 돌을 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단순히 힘으로 이기겠다 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무장을 하면서 의사표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것,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고 하죠.
청년들이 무장을 하고 데모를 하는 장면에서 오가와 신스케는 경쾌한 음악을 입혔죠. 어떻게 보면 전쟁놀이를 하는것 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재밌는 부분은 계속 심각한 상황을 그리면서 어딘가 코믹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에 있는데요. 특히 그런 부분을 긍정적으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의 역할 때문입니다. 실제로 데모하는 여성들의 모습들이 즐거워 보이잖아요. 심각한 상황인데도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 어떻게 보면 매일 운동회를 하고 있는 인상을 주기도 하죠. 여성을 매개로 해서 전통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여성들에게 주목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산리즈카 마을의 여성들도 참여하고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그러한 이유로 ’투쟁’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확인 할 수 있을까
과거 한국은 중앙권력과 싸우는 민주화 운동이였고 그것은 중앙에서 중앙과 싸우는 방식이었어요.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중앙과 싸우는 일은 사실 거의 없었죠. 밀양과 강정마을, 성주처럼 그 이후로는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이러한 투쟁을 어떻게 생각해야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무엇을 만들어 냈는가 라는 문제도 함께 생각해 봐야겠죠. 밀양의 경우 송전탑 건설에 반대했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들은 밀양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반대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 지고 발견되는 것이죠. 산리즈카의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한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죠. 60년대 부터 기록이 이어져온 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며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셨는데요. 영화를 보며 어떤것을 느꼈고 어떤 부분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지 함께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발언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관객: 산리즈카 시리즈는 7부작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중 3편을 고른 기준이 궁급합니다.
후지이 다케시: 많이 고민 했어요. 산리즈카 투쟁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잘 보여 줄 수 있는 3편을 골랐어요. <제2 요새의 사람들> 경우에는 무장을 실제로 이행하고 치열하게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입니다. 투쟁 자체라기보다는 투쟁을 준비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한 과정을 공유하고 싶어 추천 했습니다. <헤타 마을>은 오가와 신스케는 산리즈카 마을 이외에서 오랜 된 마을을 많이 촬영했는데 ‘마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가장 잘 부각시킨 영화입니다. 농민들 인터뷰가 대부분인 <헤타 마을>은 오래된 전통이 있는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그 전통 자체도 끊임없이 변형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요. 하나의 마을에도 여러 개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관객: 알고 계실거라 생각하지만 어제 백남기 농민께서 돌아가셨는데 반응을 살펴보니 농민이 왜 이런 시위에 참가해서 그런 꼴을 당하느냐는 반응이 있었어요. 혹시 선동당한 것이 아닌가는 식의 반응이 있었어요. 산리즈카도 농민의 투쟁인데 혹시 일본에서도 산리즈카를 대하는 반감이나 혐오의 입장이 있었는지 그리고 현대 일본에서도 농민운동에 대한 위와 같은 반응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후지이 다케시: 일단 농민들을 무시하는 입장은 관료들에게 뚜렷하게 있었고 외부에서 볼 때도 결국에는 농민들이 아닌 신좌파 학생들이 끌고 가는 운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확실히 있었어요. 사회적으로 볼 때 이 투쟁은 일부 과격파들의 운동이고 일반 농민들은 절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라며 투쟁과 농민을 분리시키려고 했었어요. 이런 식으로 편견을 조작 하려는 행위는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귀중한 것이죠. 농민들 자체는 무식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는 많이 했는데 그것을 실제로 확인 하기 위해서는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농민들의 고민을 접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힘인것 같아요.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록의 힘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객: 왜 ‘농민해방전선’이 아니고 ‘일본해방전선’이라는 거창할 수 있는 제목이 붙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후지이 다케시: 제가 오가와 신스케가 아니라서 정확한 대답은 못 드리겠지만(웃음) 일단은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농민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을 것 같아요. 결국에 이 상황을 통해서 변해야 하는 것은 일본 전체라고 생각하여 ‘일본해방전선‘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가와 신스케도 그 운동에 참여를 한 것이겠죠.
관객: 이 산리즈카 사건 이후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궁금합니다.
후지이 다케시: <산리즈카에 살다: 나리타 이야기>영화가 아주 잘 보여주고 있죠. <일본해방전: 산리즈카의 여름>촬영감독이 촬영 중 체포되었고 그 사람이 40년 뒤에 산리즈카에 가서 찍은 영화예요. 그 영화는 산리즈카 투쟁의 연장선상에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나오지만 투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도 했죠. <제2요새의 사람들>에서도 그 부분이 그려지는데 주민들이 투쟁 중에 자살하는 사건, 전경이 화염병을 맞아서 죽는 사건도 벌어집니다. 그런 죽음들은 결국 사람들을 계속 산리즈카에 살게한 힘이 아닐까 합니다. 투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만들어 내며 그 뒤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또한 어떤 사람을 남겼는지 잘 보여줍니다. 50년이 지난 후 지금도 싸우고 있는 힘을 확실히 만들어 낸 것이죠.
결국 공항은 만들어졌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강제수용은 잘못된 것 이였다는 정부의 인정은 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싸우다보면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 수도 있어요. 산리즈카는 계속 투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을 몇 명이라도 만들어 냈다라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산리즈카에 살다: 나리타 이야기>는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