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봉지원시사회 in 인디스페이스
<왕초와 용가리> 감독과의 대화 기록
- 일시: 08/29(월) 20:00
- 장소: 인디스페이스
- 진행: 인디스토리 김화범
- 참석: 이창준 감독



김화범(인디스토리, 이하 ‘사회자’) : <왕초와 용가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이창준 감독(이하 ‘이창준’) :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거창하거나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출장 때문에 서울역을 지나가는데, 대여섯명이 아침에 술을 먹고 있더라. 그러면서 누구 요즘 왜 안 보이지, 여기 떠나면 못 살텐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듣고 관심이 갔다. 영등포 안동네 쪽방촌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거기서 영화의 주인공인 상현과 안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제가 방송다큐를 20년 넘게 했는데, 제가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 다가가기도, 친해지기도 어려운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상현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인간적인 오기가 생겼고,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된 힘인 것 같다.


사회자 : 주인공이신 상현씨도 이 자리에 오셨는데, 인사를 부탁드린다. 상현씨와 친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창준 : 계기라기보다는… 저 친구만 통하면 접근 안 되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명함을 줬는데, 한 뭉치의 명함을 꺼내더라. 그동안 다녀간 방송사, 카메라에서 받은 명함… 그걸 보고 당황해서 그 뒤로 두 달 동안 매일 안동네로 출근을 했다. 두 달 동안은 취재와 관련된 이야기는 안 꺼내고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놀았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나니 상현이와 말을 트게 됐다. 쪽방에서 방을 얻어 3개월 정도 살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사회자 : 3개월간 쪽방에서 사셨다고 했는데, 어떠셨나? 바깥에서의 시선과 달랐을 것 같고, 쪽방을 몸으로 느끼는 경험도 색달랐을 것 같다. 그 경험들이 영화에도 반영되었을테고.
이창준 : 7월에 들어갔는데, 너무 더워서… 거의 밖에 나와서 지냈다. 카메라를 들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 주변 사람들이 동네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더라. 상현이나 집사람은 쪽방에 들어가 사는 걸 말렸지만, 당시에는 들어가 사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지금도 저는 영등포에 가면 편안함을 느낀다.
관객 :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이창준 : 빈곤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해결책은… ‘가난은 임금도 구제 못한다’고 쉽지 않은 것 같다. 제가 감히 말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단지, 저에게는 안동네가 정감있고 좋았다. 엔딩곡에 희망가를 넣었는데, 사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팍팍하다. 안동네가 좋았던 것은 강력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가난을 해결할 수 없지만, 제가 안동네에서 편하게 느끼는 감정은 서로 조금씩 모자라지만 애처롭게 돌봐주고, 보듬어주기 때문인 것 같다.
관객 :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이창준 : 상현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남에게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다 보여줬고, 전화하면 밥먹었냐며 챙겨줬다. 상현이란 친구에게 진심어린 말을 듣고, 가족이 여기 다 왔는데… 다음 작품을 뭘 하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객 : 상현과 정선을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창준 : 정선은 철없었던 나의 20대 모습, 항상 꿈을 쫓아가던. 상현은 지금 나의 모습인 것 같다. 복수는 미래의 모습이고. 그래서 비중은 상현과 정선이 크지만, 복수형도 크다. 안동네에 가니 딱 그 인물들이 보이더라.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진태는 보너스로 들어온 사람이다.
관객 : 구호단체에서 물품을 받아 다시 되파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창준 : 처음엔 저도 그런 상황을 잘 몰랐다. NGO를 통해 저도 들어갔고, 있으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단체들에서 급식 지원하는 것들은 필요하다, 실제로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고. 예전에 아프리카 원주민의 한 족장을 인터뷰했는데, 백인들은 우리 원주민에게 뭐가 필요한지 묻지 않는다, 줄 수 있는 것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영등포에도 밥 주는 전쟁을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게 뭔지 설문조사를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게 문제인 것 같다.
관객 : 주인공 상현의 소감을 듣고 싶다.
조상현 : 제가 찍히지만, 무슨 영화인지 잘 모른다. 오늘 보니 제가 봐도 재미있다. 그동안 아이와 함께 살겠다는 꿈을 이뤘고, 더 열심히 살겠다.
관객 : 영화에서 사운드 사용이 특이한 것 같다.
이창준 : 정선이 죽은 후에 음악은 원래 슬픈 음악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밝은 음악으로 바꿨다. 정선은 죽었지만, 상현이를 봤다. 장례식에 가서 울고 슬퍼하지만, 또 살아가야 하지 않나. 우리가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마지막에 희망가를 넣으면서 흑백으로 처리를 했는데, 그 노래가 100년 전에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노래이다. 그런데 가사 내용이 지금이랑 너무 똑같다. 우리 삶 자체가 생생한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넣었다.


관객 : 편집하면서 넣지 못한 부분, 공개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나?
이창준 : 편집을 1년, 지긋지긋할 정도로 했다. 마지막까지도 아쉽다. 그래도 제가 찍은 것 중에 명장면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 넣어서, 아쉬운 부분은 없다.
관객 : 처음에 영화를 만들 때 생각하신 이야기가 있는지, 그리고 ‘진태’라는 인물을 넣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창준 : 솔직히 영등포 재개발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이렇게 찍어야지라고 생각한 건 없었다. 매번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한게 바뀌었다. 이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이야기, 이 친구는 내 카메라를 받아줄까, 긴장해서 다른 무엇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길을 잡았지만, 처음엔 그랬다. 스토리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여기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애학 담았다는 점이다. 제가 찍은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길 원치 않았다. 마침 진태가 NGO에 들어갔고 그런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관객 : 재미있는 극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잘 생기고, 말씀도 잘 하시고 정말 배우같다. 벚꽃데이트는 따라해보고 싶을 정도이다. (웃음)
사회자 : 마지막으로 개봉을 앞둔 소감을 듣고 마무리하겠다.
이창준 : 어려움이 있었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끝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많다.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상영이 되고, 개봉지원을 받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인데 일어나서 많이 기쁘고 감동적이고, 도움 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 개봉하면 많이 보러와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