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다큐멘터리와 미장센
다큐멘터리, 무경계의 시학 (1부)
조명진 전문위원 프랑스국립예술사연구원 프로그래머
무대 위의 등장인물들, 무대 장치 등의 배치와 관련된 연극 용어에서 유래된 미장센 (Mise en scène)이란 불어는 영화 용어로 유입 되면서, 흔히 한 프레임의 화면 구성에서부터 넓은 의미로는 영화 전체적 연출을 이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사전(辭典)적 동의어로 제시되는 표현 중 하나가 극영화를 이르는 픽션의 대척점에 있는 ‘논픽션’으로, 이 쟝르가 담아내는 내용이 허구가 아닌 실제의 사실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연출이라는 의미의 미장센이란 이 용어는 꽤 오랫동안 선험적으로 다큐멘터리와는 관련이 없는 극영화의 용어로 이해되어 왔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를 지칭하는 또 다른 용어인 ‘기록 영화’라는 표현은 기록이란 단어가 지시하 듯 다큐멘터리의 역할을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현실의 보고서, 문서(Document)를 만들어 내는 역할이라고 정의하며,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는 주관적인 개입이나, 관여 없이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사실들 만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영화적 청교도적 자세를 강요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의 흔적을 발견할 때, 관객들 또는 평론가들 조차 그 사실을 그 영화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으로 옮겨갔던 논쟁의 역사가,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대해 때로는 기계적 이분법적 잣대 아래, 비생산적인 논쟁의 역사가 다큐멘터리 영화사에 그 태초부터 감독의 주관적 카메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현재까지도 존재한다.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준비한 특별기획의 주제를 ‘다큐멘터리와 미장센’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 주제는 우리가 다큐멘터리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때에도, 다큐멘터리 작가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대한 분석을 함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의 미학과 윤리학에 대한 성찰을 할 때에도 적절한 출발점이 되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이다. 사실상 이 섹션의 의도는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류나, 경향성에 대한 고찰이 아니다. 이 섹션을 통해 소개되는 <아란의 사람들>(Man of Aran, 1934), <어떤 여름의 연대기>(Chronicle of a Summer, 1961), <미 1번 국도>(Route One USA, 1989), <퍼니시먼트 파크>(Punishment Park, 1971), <이란 사람>(Iranian, 2014) 그리고 <튀니지의 샬라>(Challat of Tunis, 2013) 등 총 여섯편의 작품들은 다큐멘터리 초창기 고전에서 부터 가장 최근의 작품까지를 아우르는, 다큐멘터리에서의 미장센에 대한 선입관에 맞섰거나, 이 쟝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 들었던 무수한 다큐멘터리 영화들 중의 한 예들의 선택이다. 여기서, 이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자면, 그것은 아마도 이들 작품들의 감독들이 단순한 관찰자,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다큐멘터리적 진실을 모색하는데 적절한 연출의 형식을 찾고자 노력했다는 것일 것이다.
흔히 다큐멘터리 영화의 근간을 만들어 냈다고 일컬어지는 뤼미에르 형제는 그들의 첫 영화이자, 영화사상 최초로 관객 상영되었던 영화이자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일컬어 지는 영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 1895) 을 세번에 걸쳐 촬영했다. 첫 번째 버전이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카메라이자 영사기인 시네마토그라프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단순히 뤼미에르 필름 공장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것이라면,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촬영 되었던 이후 두 버전의 경우, 이들 노동자들은 일요일 미사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소집되었고, 이들은 마치 하루 종일의 일과를 끝내고, 퇴근을 하는 것 같은 광경을 연출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일요일 성당에 가기 위해서 입던 흔히 ‘일요일의 의상’이라고 불리던 근사한 모자와 자신들이 소유한 가장 좋은 옷을 잘 차려 입고 등장하며, 공장주이자 이 작품의 감독들이었던 뤼미에르 형제의 지시에 따라 공장의 정문을 마주 보고 세워진 카메라를 피해, 오른쪽, 왼쪽 양 갈래로 꽤나 질서정연하게 갈라져 촬영중인 카메라를 방해하지 않고, 화면 밖으로 이동한다. 물 흐르듯 잘 짜여진 이 이동의 흐름을 갑작스레 뒤흔드는 것은 화면 앞, 즉 카메라 쪽으로 갑자기 뛰어 오는 개 한 마리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메라 앞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카메라 근처로 다가오는 사전에 통제되지 않았던 한 아이의 등장을 통해서다. 극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죠르주 멜리에스의 영화들과 이 작품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등장인물들은 배우가 아니며, 시나리오에 따라 구상된 역할을 하는 멜리에스의 배우들과는 달리, 뤼미에르 형제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하루하루 반복하는 자신들의 현실에서의 역할을 카메라 앞에서 반복하고 있으며, 시나리오에 의해 구상되지 않은 즉흥적인 삶의 한 순간이 개입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태초의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작품에서도 다큐멘터리는 이미 실재의 단순한 기록 녹화가 아닌 감독의 최소한의 미장센을 통한 현실의 재현을 꾀하고 있었다.
“모든 위대한 픽션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경향성을 가진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다큐멘터리가 픽션 영화의 경향성을 가지는 것과 같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지라도, 종국에 이르러서 이 둘은 서로 조우하게 된다.”[1]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장 뤽 고다르의 유명한 이 선언은 초기 다큐멘터리 작품들 속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경향이었다.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인 <북극의 나누크>, <아란의 사람들> 등의 작품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로버트 플래허티는 다큐멘터리 쟝르의 정의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 최초의 감독이기도 했다.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의 고전인 “북극의 나누크”에서 로버트 플래허티가 재현하는 (흔히 에스키모라고 서양인들에게 불리우던) 이누이트들의 삶은 정확히는 이 영화가 촬영되던 1920년대 당시 주인공 나누크로 대표되는 이들의 삶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이누이트들의 삶의 양식은 사실은 이미 사라진 그리고 또 사라져 가고 있던 나누크의 아버지 세대, 혹은 더 머나먼 이누이트 선조 세대의 생활 방식들이었다. 실제로, 나누크가 삶던 이 시기에는 외부 세계와의 빈번한 교류로 인해, 현대 문명의 여러 이기들이 이미 이들의 삶 곳곳에 조금씩 침투하고 있었다. 물론 플래허티는 그가 도착했던 1920년대 북극의 이누이트들의 이러한 삶을 그대로 재현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서양의 문물이 이곳에 도달하기 전 그들만의 삶을 이어가던 이누이트들의 점차 사라져 가는 모습과 전통을 보여주길 원했다. 수년간을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플래허티는 이누이트들이 구전하는 그 선조들의 삶을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직접 연기하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테크닉적인 문제는 플래허티로 하여금 일종의 세트를 만들 필요를 제기하기도 했다. 즉, 나누크 가족들이 이글루 안에서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실제 이글루의 몇배에 달하는 이글루를 만들어야 했다. 촬영 장비를 설치할 여분의 공간과 이 가족들의 삶을 관찰할 만한 적절한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 없이 과연 우리는 그들의 내밀한 삶을 지금까지 기억할 수 있었을까 ?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나누크와 그의 가족은 1920년대 플래허티라는 서양의 감독을 만난 한 개인으로서의 이누이트 일 뿐 아니라, 그들의 선조를 대신하고, 그들의 민족을 대표하는 한 인간군상으로 남았다.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대서양 서쪽 아일랜드의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아란 섬에서 자연과 사투를 벌이는 치열한 섬 사람들의 삶을 그린 플래허티의 또 다른 작품, <아란의 사람들> 또한 플래허티의 이러한 영화관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개봉당시 부터 다큐멘터리의 정의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는 3인 가족은 실제로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섬 주민들이었고, 이들은 플래허티가 미리 구상한 가족의 역할을 연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 속의 작살을 이용한 돌묵상어의 사냥은 실제로는 플래허티가 이 작품을 촬영하기40년전에 이미 사라진 아란 섬 사람들의 옛 생활방식이었다. 이처럼 영화는 많은 부분을 재연에 의존하고 있다. 카메라 앞에 직접 세울 수 있는 것, 현실에서 시각화되는 것 만을 보여 줄 것인가, 이제는 사라졌지만, 불가시의 영역에 있으나,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사라진 삶의 진실의 순간들을 카메라 앞에 다시 세울것 인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서 플래허티가 끊임없이 제기했던 물음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여름의 연대기>과 시네마 베리떼
1960년대 초는 이 시기 나타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다이렉트 시네마, 시네마 베리떼, 칸디드 아이 등 여러가지 명칭이 부여된, 카메라와 그 대상의 더욱더 직접적인 만남을 다양한 형식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들과 그에 대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경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어깨에 멜 수 있는 경량의 카메라와 녹음기의 발명이라고 흔히들 설명되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새로운 표현수단을 염원했던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선행된 요구가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이끌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 중 장 루슈 감독이 사회학자인 에드가 모랭과 함께 작업한 1961 년작 <어떤 여름의 연대기>는 바로 시네마 베리떼라는 영화적 진실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방관자적 관찰자의 입장이 아닌 촉매제로서의 카메라의 역할을 주장했다. 알제리 전쟁이 6년째 계속되고 있던 이 당시의 파리 사람들에게 이 두 감독은 두명의 인터뷰어를 통해,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묻는다.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할 것 같은 행복이라는 감정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분위기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는 계속해서 환기시키고 있다. 단순한 의견의 취집이 아닌, 질문을 통해, 카메라의 존재를 통해, 지금의 상황에 대해 숙고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카메라는 촉매제로 사건과 사고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카메라의 역할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명의 인터뷰어 중 한 명이자 독일계 유태인인 마르셀린 노리당이 어머니와 함께 겪었던 나치의 강제 수용소행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치 극영화에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체면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에 억눌린 과거의 기억을 찾는 것처럼, 두 감독은 마르세린으로 하여금 그 기억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체면술사 처럼 또는 대상을 트랜스 상태에 빠트리는 샤먼처럼 마르셀린이 마치 신이 들린 사람처럼 과거의 순간을 다시 기억하고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존재가 옛 기억이 떠오르는 픽션적인 디에제즈의 공간을 구축한다. 이처럼, <어떤 여름의 연대기>는 단순한 1960년대 파리의 거리 스케치가 아닌 카메라 앞에선 대상들의 진실과 본질을 참여적 카메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계속)
[주1] Jean-Luc Godard(1985), Jean-Luc Godard par Jean-Luc Godard, Les Editions de l’Etoile/Les Cahiers du cinéma, p.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