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rsity, Memory, plan Z:
역대 수상작으로 살펴 본 다큐멘터리의 어떤 경향
이지선 시민에디터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비전을 넘어 세계인의 다큐멘터리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36개국 116편의 영화를 상영했고, 총 관객 1만8천909명, 37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수치를 보였다. 그러나 외연적 팽창과는 별도로 영화제는 어떤 영화를 선보이고 있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제의 상영작들을 수상작을 중심으로 일별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외연팽창을 위해 어떠한 가치들을 솎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억’이라는 시네마의 영원한 화두를 간직하고 있는지, 현실이 영화 속에 적절히 거울지고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할 테다. 비무장지대의 이니셜인 ‘DMZ’가 이러한 지표들에 약속한 듯이 조응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D Diversity
다양성은
다큐멘터리(이하 다큐)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빈번하게 언급되는 특성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 이산 등의 문제와 위안부, 2차 세계대전의 피해 등 아픈 역사의 기록, 예술, 사랑, 인간의 삶에 대한 다양한 시선, 그리고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직시하는 다양한 다큐영화들을 통해 극장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폐막 인사에서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시대별로 유행하는 장르가 있는가하면, 동일한 배우가 비슷한 스타일의 흥행 키워드를 다루는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기도 하는 극영화에 비해, 다큐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하기 버거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엮어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다양성이라는 명목 하에 큰 흐름을 잡아본다.

첫 번째로는 다뤄지는 장소가 다양하다. 국제다큐영화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배경이 되는 공간이 다채롭게 제시되고 있는데 제1회 국제경쟁 대상 수상작인 <반유대주의에 대한 보고서>의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체코, 멕시코, 베트남, 레바논, 이라크, 덴마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문제의식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주1]

두 번째로는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소재들이 다양하다. 사상의 자유를 다루었던 <경계도시2>를 비롯해 종교 문제를 다룬 <오체투지 다이어리>, 환경문제를 다룬 <봄베이 비치>와 국내최초 고교 야구 다큐 <굿바이 홈런>까지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섣불리 펼쳐 내기 힘든 성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제법 찾아볼 수 있는데,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 <옥탑방 열기>, <불온한 당신>과 성 노동자들이 이야기에 귀 기울인 <레드마리아2>, 나아가 <불편한 시선, 불편한 진실>에서는 청소년의 성을 다루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소재를 제시하는 표현 양식이 다양하다. 감독들의 실험적인 시도에서 선택된 영상 언어가 독특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구현하고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9월의 새들>은 레바논 시가지의 다양한 이미지 나열로 시적 다큐와 같은 느낌을 주고, <28일의 밤과 시>는 절제된 화면 연출과 반복되는 사운드, 다양한 포맷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하나의 에세이로 읽힌다. 감독은 사진관의 오래된 필름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여주는 동시에 핸드폰 화면을 통해 관련된 인터뷰를 보여주는 등 나레이션이나 푸티지를 활용하는 보통의 영상 문법을 신선한 방식으로 고민하며 다큐를 풀어간다.
자연스레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공통된 해석에서 벗어난 작품들도 눈에 띄는데 주변 사물을 다른 시선에서 둘러보게 하는 <의자가 되는 법>, 학교에 대한 시각과 배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볼 수 있는 다큐 <대한민국 1% 미만>을 예로 들 수 있다. 영화제 초창기에는 국제단위의 갈등과 분쟁을 다루거나 환경 문제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반면, 최근에는 그 스펙트럼이 넓어지며 더욱 다양한 가치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M Memory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역사가 된다.
“잊혀야 할 것들, 기억할 것들의 중용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삶과 죽음 사이에 살아야 하는인간적 운명의 필연적 결과”
[주2]
기억의 3요소로는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 유지하고 있는 사항을 회상할 수 있는 활동을 들 수 있다. [주3] 과거의 것들을 다루는 다큐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잘 활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2013년 관객상을 수상한 김형주 감독의 <망원동 인공위성>은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의 인공위성 발사 계획에 대한 야심찬 도전을 기록한 것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전 세계 최초로 시도된 개인 인공위성 발사 과정은 영화를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물게 되고 아마도 훗날에는 도전의 역사에 기입 될 것이다.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에서, 기억은 상상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이 이러한 지점에 대해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상상과는 차별화 된다. 있어 왔던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기억하느냐의 문제 또한 포함한다. [주4] 이 다큐는 기억한 것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의 대응 관계가 주요 문제로 언급된다. 폴 리쾨르가 지적하듯 잊혀야 할 것들과 기억할 것들의 중용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라진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는 다큐에서는 회상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곤 하는데 2014년 전 국민의 가슴 아픈 기억을 소재로 한 <599.4km>, 47년 만에 개통된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흩어진 기억들을 모아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힘든 기억 보존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드러난 <자, 이제 댄스타임>을 예로 들 수 있다. 영화제 사상 최초로 한국 다큐가 국제경쟁부문에 진출해서 대상까지 수상하게 된 조세영 감독의 <자, 이제 댄스타임>은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모자이크를 벗고 카메라를 마주한 채 자신들의 기억을 솔직하고도 용감하게 열거해나는 모습으로 관객들 또한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중 잣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Z Plan Z
Plan A가 최선이고 Plan B가 차선이라면,
Plan Z는 최후의 생존 전략을 의미한다.
2009년 DMZ 국제다큐영화제가 개최된 이래로 두 차례나 정권이 교체되었고, 근 10년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왔으며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영화적 담론도 풍부해졌다. 지울 수 없는 아픔의 역사를 겪은 어르신들부터 어린 나이에도 ‘세월’의 상처를 분명히 기억하는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정의가 무엇인지 물었고 촛불을 들었다. 또, 아픈 청춘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리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게 되었다. 심지어 지난해 극장가에서는 생존만을 소재로 한 영화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웰빙 열풍으로 잘 사는 것에 관심을 갖던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에만 목표를 두게 된 안타까운 현실은 다큐에서 더욱 치열하게 드러난다.

생존을 다루는 작품을 언급하자면 반정부 투쟁을 그려낸 <세계가 충돌할 때>, <밀양 아리랑>, <체코에 평화를>과 <용산, 남일당 이야기>가 있고,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난민을 다룬 <점프>와 노동자의 생존 문제를 다룬 <붉은 옷>과 <산다>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청소년 수상작에서는 그들의 가장 긴급한 생존 문제인 입시와 진로, 취업 문제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발.>, <나는 열아홉이고 싶다>, <희망의 우리학교>가 그것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반정부 시위대에서 국경의 장벽으로, 노동 현장에서 또 입시 지옥으로 장소만 옮겼을 뿐 말 그대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물론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2013년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인 리즈 마샬 감독의 <우리 체제의 유령들>은 유럽을 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하는 사진작가 조 앤 맥아더를 뒤따르며 깊이 있는 시선으로 현대 산업 사회에서 마주한 비극적인 동물들의 생존 문제에 대해 폭로한다. 이 영화는 다양한 공간에 놓인 동물들에게 집중하며, 인간과 동물 사이의 폭력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영화제 수상작을 대상으로 Diversity와 Memory, Plan Z로 분류해서 다큐멘터리의 어떤 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미국인이 제작한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를 떠올려 보면, 초창기 타자를 대상화하던 카메라가 점점 우리라는 공동체를 향하게 되고, 개인의 서사를 다루다가 급기야 최근에는 1인 미디어 플랫폼의 발전으로 나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향을 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에 맞추어 살아가던 사람들이 다큐를 통해 조금은 특별한 나의 이야기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연대하기 시작했고 공동체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다시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다큐를 통해 다양한 사회를 마주하고, 끈질긴 생존자의 기억을 따라가기도 하며 때로는 끔찍한 사건의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Plan Z를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치열한 사회 활동가로, 동시대의 관찰자가 되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역사가 될 그 기억의 기록은 오는 9월 21일(목)부터 28일(목)까지 백석 메가박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주1] 체코(2회 대상 수상작 <체코에 평화를>), 멕시코(3회 대상 수상작 <깊은 산 작은 마을>), 베트남(4회 대상 수상작 <당신에게 내가 없다면>), 대한민국(5회 대상 수상작 <자, 이제 댄스타임>), 레바논(6회 대상 수상작 <9월의 새들>), 이라크(7회 대상 수상작 <이라크영년>), 덴마크(8회 대상 수상작 <점프>)
[주2] Ricoeur, P.(1996) ‘Memory, Forgetfulness, and History’ in History, Memory, and Action. The Israel Academy of Sciences and Humanites : 13~24
[주3] 강영희 <생명과학대사전>(2008)
[주4] (공)이양수 <폴 리쾨르>(2016) 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