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극이라는 짝패에 관하여:
가와세 나오미(河瀬直美)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한동혁 시민에디터
많은 감독들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만든다. 그들은 극영화로는 접근 할 수 없는 대상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선택하거나, 반대로 다큐멘터리로는 접근 할 수 없는 대상에게 다가가기 위해 극영화를 선택한다. 물론 선택의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이분법적으로 극과 다큐,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혹은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가능성이 계속해서 넓어져가고 있는 지금, 어쩌면 더 이상 극과 다큐멘터리라는 구분으로 개별 영화들과 감독들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게으른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극과 다큐를 동시에 만드는 감독들이 어떤 순간에 극영화의 전통을 따르는지, 어떤 순간에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따르는지를 질문하고 동시에 사유하는 일은 그 감독을 이해하는데 좋은 시작점이 되어준다. 가령 지아 장커는 왜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다큐멘터리 <동>(2006)과 극영화 <스틸 라이프>(2006)를 동시에 만들었는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픽션과 논픽션은 어떻게 한 영화 안에서 공존 할 수 있는가?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배우인가 아닌가?

같은 맥락의 질문과 사유. 이 글에서 생각해보고 싶은 감독은 가와세 나오미다. 가와세 나오미는 디지털 시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만들어온 감독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배운 후에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녀는 학교 과제를 위해 우연히 8mm 필름카메라를 들게 됐고, 카메라에겐 ‘지금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잘라내 그것을 미래에 재현해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느꼈다. 그 후로 그녀는 홀로 자기 주변과 자기 자신을 찍기 시작했다.
알려져 있는 가와세 나오미의 첫 영화는 <따뜻한 포옹>(1992)이다. <따뜻한 포옹>은 자신을 버리고 간 부모를 그리워하는 그녀 자신을 찍은 영화다. 가와세 나오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모에 대한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며 부모의 흔적을 쫒아간다. 그녀는 한 손에는 부모의 사진,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 속 공간을 찾아가 그 풍경을 자신의 카메라로 똑같이 다시 찍는다. 별다른 스태프도 없이 자기 주변을 무작정 홀로 찍어나가는 가와세 나오미는 자신이 만난 이미지들 위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나레이션을 겹쳐 놓는다. 그녀는 끝내 영화의 끝 무렵, 어렵사리 아버지와 첫 통화를 나눈다. 영화는 아버지와 통화를 나누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끝난다.

<따뜻한 포옹>과 함께 만들어진 <달팽이: 나의 할머니>(1994)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후 자신을 입양해 키워준 할머니를 찍은 영화다. 전작이 멈춰 있는 과거의 이미지(부모의 사진)와 흘러가고 있는 현재의 이미지(자신의 6mm 필름카메라)를 계속해서 교차하며 진행되는 반면, <달팽이: 나의 할머니>는 지금 이 순간 자신과 할머니의 시간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꽃을 만지고 있는 할머니의 손과, 구름을 향해 뻗은 자신의 손이 교차되며 보여지는 이미지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할머니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림자가 질 정도로 카메라를 할머니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대서 찍은 장면들은, 긴 시간을 버텨낸 뒤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할머니의 주름살들을 선명하게 기록해낸다.
유명한 이야기. 앞서 말한 가와세 나오미의 두 영화는 1995년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두 편 모두 수상한다. 가와세 나오미의 진심을 본 거장 촬영 감독 다무라 마사키(오가와 신스케, 아오야마 신지의 촬영감독)는 직접 카메라를 잡고 가와세 나오미의 첫 극영화 <수자쿠>(1997)의 제작을 돕는다. <수자쿠>는 칸영화제에 출품되었고, 가와세 나오미는 이 영화로 27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다. 가와세 나오미는 <수자쿠> 이후 <호타루>(2000)를 연출해 이번에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감독이 된다.
하지만 두 편의 극영화가 거둔 국제적 성취에도 가와세 나오미는 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에 남는다. 먼저 외톨이로서의 자리. 가와세 나오미는 <수자쿠> 이후 다무라 마사키와 다시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건 <호타루>의 촬영감독인 이모노토 마사미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공간으로서의 자리. 가와세 나오미는 <따뜻한 포옹>과 <달팽이: 나의 할머니>의 배경인 자신의 고향 나라현을 떠나지 않았다. 가와세 나오미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홀로 자신의 고향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어 나갔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아슬하게 걸쳐 있는 영화 <그림자>(2001)는 <따뜻한 포옹> 이후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담아낸 영화다. 아버지뿐 아니라 다시금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영화에 담아낸 가와세 나오미는 10년 전 두 편의 영화로는 채우지 못한 가족애에 대한 갈증을 영화를 찍으면서 채운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치유하는 영화. 아버지의 몸에 있던 문신을 자신의 몸에도 새기며 끝이 나는 이 영화는 그래도 10년 전 영화의 엔딩보다는 한발 더 나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가와세 나오미의 극영화 <사라소주>(2003)는 다큐멘터리 <벚꽃 편지>(2003)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으며, 스스로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준비 과정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밝힌 극영화<너를 보내는 숲>(2007)은 아들을 출산하는 자신을 찍은 다큐멘터리 <출산>(2006)과 함께 만들어졌다. 죽음과 탄생. 탄생과 죽음. 가와세 나오미는 두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며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을 동시에 통과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흔적>(2012)은 <달팽이: 나의 할머니>와 이어지는 영화로서,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영화다. 20년전 찍은 <달팽이: 나의 할머니>의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다시금 사용되는데, 이는 마치 <따뜻한 포옹>을 찍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영화가 과거의 이미지와 현재의 이미지를 교차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제는 가와세 나오미가 발견해 낼 수 있는 힘을 터득한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의 가와세 나오미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처음으로 도쿄에서 영화 <앙: 단팥인생 이야기>(2015)를 찍었다. 신비로운 점은, 같은 해에 완성된 <아마미>(2015)도 그동안 영화를 찍어 왔던 그녀의 고향, 나라 현을 떠나서 만든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나라 현이 고향인줄로만 알았던 가와세 나오미는 30살이 넘어서야 사실은 일본 남부의 섬 아마미 오시마란 곳이 자신의 고향임을 알게 된다. 어린 아들과 함께 아마미를 찾은 가와세 나오미는 아마미의 사람들, 그리고 아마미의 자연과 대면한다. 그녀는 아마미에서 자신의 과거를 조금 더 알게 된다. 나라 현에서만 영화를 찍던 그녀가 다른 곳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곳에 <아마미>가 있었다는 사실은 내겐 가볍지 않게 느껴진다.

가와세 나오미는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녀의 시작은 자신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작은 카메라였다. 그녀는 첫 영화를 만든 이후 20년이 넘도록 스스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지켜왔다. 자신의 결핍과 외로움. 그것을 채워내기 위해 그녀는 용감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아간다.
가와세 나오미의 극영화는 그녀가 만든 다큐멘터리들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로는 구현 할 수 없는 상상 속 이미지의 재현이다. 가와세 나오미는 그녀의 극영화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 인물들의 분신을 불러낸다. 바람이나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닮은 남성. 그런 남성들과 힘겹게 사랑을 이어가는 여성. 지혜롭고 마음씨 좋은 할머니. 어린 시절 잃어버린 가족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주인공.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딸들. 마치 탄생하듯 넓은 바다에서 나체로 헤엄치는 소년과 소녀.
가와세 나오미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것은 어떤 미학적 결단도, 어떤 전략적 선택도 아니다. 그녀는 두 형식의 영화를 필연적으로 동시에 받아들였다. 마치 성장하듯 쌓여가는 가와세 나오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녀의 직접적인 삶을 배우고, 극영화를 통해 그녀가 나아가고자 하는 삶을 배운다. 두 형식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상호작용한다. 가와세 나오미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동시에 만날 때 그 영화적 힘이 더 커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