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여성의 신체활동-페미니즘으로 살펴본 몇 편의 스포츠 다큐멘터리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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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여성의 신체활동-페미니즘으로 살펴본 몇 편의 스포츠 다큐멘터리:
<자유를 향한 질주>, <여자답게 싸워라>

신효진 시민에디터

 

상황 1. WK리그 이천대교여자축구단의 박은선 선수는 이른바 ‘남성스러운’ 외모와 뛰어난 실력으로 인한 성별 논란으로 여러 차례 성별 검증 절차를 감내해야했다.
상황 2. 2016년 리우 올림픽이 열릴 당시 한국의 언론을 살펴보자. 세계 신기록을 여러 차례 경신한 미국의 수영선수 케이티 레데키는 “여자 펠프스”라 불리고, 올림픽 100m 3연패에 도전하는 자메이카의 셜리 앤 프레이저 선수는 “여자 우사인 볼트”로 지칭된다.

‘상황 1’은 스포츠를 행함에 있어서 여성의 몸이 사회가 규정해 놓은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유지하지 못했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잘 보여준다. 스포츠에서의 젠더 정체성 문제는 아직까지도 생물학적 측면에 기반을 둔 관점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상황 2’ 속 여성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평가 받을 때 남성 선수의 기량에 빗대어 평가받고 있다. 아직까지 스포츠계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은 여성을 열등하고 결핍된 존재로 규정화하는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있다. 가부장적인 사회 테두리 아래에서 여성 선수들은 남성과 가부장권을 지탱해주고 받쳐주는 언어규칙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회적 성역할에 의한 불평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특히 신체의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스포츠 영역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본고에서는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된 두 개의 스포츠 다큐멘터리와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을 경유하여 차별받고 있는 ‘운동하는 여성의 몸’을 어떤 시선으로 살펴보아야 할지 헤아려보았다. 여기서 버틀러의 개념들은 가부장적 폭력 실천을 해체시키는 도구로서 작용할 것이다.


“젠더는 본질의 외관, 자연스러운 듯한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오랫동안 엉겨온 매우 단단한 규제의 틀 안에서 반복된 몸의 양식화이자 반복된 일단의 행위이다.”(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p.148)

여성은 달릴 권리도 없다?

“여성 스포츠는 자연의 법칙을 전적으로 거스른다”, “여성이 격렬하거나 폭력적인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 한다” 근대 올림픽 대회를 창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남긴 말들이다. 이러한 발언들은 신체활동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왔는지 방증한다. 피에레 모라스의 다큐멘터리 <자유를 향한 질주>(Free to Run, 2016)에는 근현대 스포츠 역사에 있어 달릴 권리조차 없었던 여성 마라토너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1961년 캐서린 스위처는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했지만, 레이스 도중 여성 참가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독관에게 등번호를 찢기는 제지를 당한다. 그녀는 4시간여 만에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대회 주최 측은 결국 그녀를 실격 처리했다.[1] 올림픽의 역사에 있어서도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개최된 이후 30여년이 지난 1928년 여성의 육상 트랙경기가 정식종목으로 추가되었고 1984년 LA 올림픽에 이르러서야 여성이 마라톤 종목에 참가할 수 있었다.[2]

<자유를 향한 질주>(Free to Run, 2016)

이처럼 스포츠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 주체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타자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폭발적인 스피드와 강인한 근력이 필요한 소위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운동 경기에 있어서는 그 차별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버틀러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신체의 구분이 자연적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젠더와 성별의 신체 구분에 있어 ‘자연주의’는 상당 부분 오늘날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수행함에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이데올로기 위에서는 개별 행위자의 역량이나 역학관계를 재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에 서툴다 등의 주장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성별(sex)뿐 아니라 젠더(Gender)와 섹슈얼리티(sexuality)전반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 구분점이 정당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궁리해보아야 할 것이다.

엎어치기-여자답게 싸우는 방법

이윤영 감독의 <여자답게 싸워라>(Fight like a Girl, 2017)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는 무도/스포츠 주짓수를 통해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지향한다.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싶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 싶은 윤영은 ‘여자답게 싸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영화 속 남성 관장들은 여성이 주짓수를 수련하는 거의 대부분의 이유를 다이어트라고 치부해버리고, 국내 유일 여성 주짓수 블랙벨트 이희진 관장 역시 인터뷰를 통해 남성들과 대결에 있어 여성은 ‘봐주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고 토로한다. 스포츠에 있어서 단순한 성차에 의한 불평등은 해소될 수 없는 것인가.

전술하였듯 『젠더 트러블 Gender trouble』 속 버틀러 관점에서 여성성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강제적 규범에 의해 구성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강제적으로 억압되어진 여성성이 오히려 규범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권력의 재배치를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고, 이 투쟁은 억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둘러싼 각종 혐오와 차별이 오히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제한된 성적 이미지를 해체하는 전복의 수행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혐오 발언 Excitable Speech』을 통해서도 ‘되받아치기(speaking back)’ 개념을 통해 기존 권력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사회적 관계들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을 고착시키거나 심화시키는 언어를 ‘되받아침’으로써 끊임없이 말과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들을 되묻고, 이를 통해 불균형적인 권력관계를 재배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을 제압한다는 쾌감을 선사해주는 주짓수. 영화 속 윤영은 이 주짓수를 통해 물리적이고 이념적인 힘을 찾고 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두려움 없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윤영의 싸움은 관객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리고 이미 강해진 자신의 힘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상대로 ‘엎어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답게 싸워라>(Fight like a Girl, 2017)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여성/남성이라는 성별이 운동 능력으로 직결되고 그로 인해 성별이분법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사회학적 성에 대한 인식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다층적으로 변화해감으로써 스포츠계에서도 젠더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버틀러 역시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호모섹슈얼 등의 다양한 신체 그리고 정체성 개념을 통해 인간 몸의 유동적 수행성을 강조한다. 젠더가 불변적 속성이 아닌 변화가능한 수행구조인 것이다. 실제 이러한 논의를 참고하여 2016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가 기준이 완화되기도 하였다.

여기 성별지향, 젠더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신체활동을 즐기는 퀴어 스포츠팀이 있다. 에리카 트렘블레이의 <인더턴>(In the Turn, 2014)은 퀴어 롤러 더비팀 ‘버진 레짐’의 이야기를 다룬다. 운동은 좋아하지만 자신의 성별정체성 때문에 어느 팀에도 속하지 못하였던 ‘크리스탈’에게 이제 스포츠는 정체성과 신체적 제한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렸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 질수 있는 세상. 버진 레짐은 오늘도 동료들과 손을 마주잡고 여성의 신체활동 속 젠더 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해 달린다.


[주1] 캐서린 스위처는 이후 50년 이 지난 2017년 보스턴 마라톤에 다시 출전하여 완주에 성공했으며 대회 주최 측은 당시 그녀의 배번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겨 기념하기로 결정하였다.

[주2] 올림픽 참가에 있어 1980년 즈음에서는 여성경기가 남성과 비등한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일부 국가에서는 종교 등의 이유로 여성 선수를 불참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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