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다큐영화제 참관기 1] 태국의 다큐영화제 살라야 독(SALAYA DOC)

2016.04.15

타이 방콕에서 열린 다큐영화제 ‘살라야 독(SALAYA DOC 6)’ 참관기 

 

박혜미(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타이 필름 아카이브’가 조직하는 다큐영화제

살라야(SALAYA)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40Km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곳에 타이 필름 아카이브(Thai Film Archive)가 자리잡고 있다. 타이 필름 아카이브가 주최하는 살라야국제다큐영화제는 올해 6회를 맞는 영화제로, 3월 26일부터 4월 3일까지 살라야의 타이 필름 아카이브와 방콕의 중심가에 있는 방콕문화예술센터에서 열렸다.

필자는 살라야 독의 유일한 경쟁 부문인 동남아시아 대상 섹션의 심사위원으로,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펀딩’이라는 주제의 패널로 6일간 살라야 독에 참석하게 되었다. 총 32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경쟁부문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8편의 장단편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2011년 Thai Film Foundation(현재는 타이 필름아카이브와 합쳐졌다)과 타이 필름 아카이브가 함께 만든 이 영화제는 태국의 관객들에게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고, 태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2회부터 아세안 국가들의 다큐를 대상으로 한 경쟁부문을 신설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다큐를 상영하고,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프레드릭 와이즈만), <침묵의 시선 The Look of Silence>(조슈아 오펜하이머), <이라크영년 Homeland: Iraq Zero Year>(압바스 파델) 등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작품이나 유수 영화제에서 화제를 얻은 수상작, 화제작 등을 상영한다.

영화제 기간 중 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을 위한 워크숍도 매년 열리는데, 일본의 야마가타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인 후지오카 아사코(Asako Fujioka), 태국의 감독 우루퐁 락사드(Uruphong Raksasad),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레오나르도 레텔 헴리히(Leonard Retel Helmrich), 일본의 소다 카즈히로(Kazuhiro Soda) 감독, 베트남 감독 Nguyen Trinh Thi 등이 멘토로 참여했다. 올해는 초청한 해외 멘토가 급작스레 일정을 취소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워크숍은 개최되지 않았다.

 

살라야 독의 영화들

올해에는 특별프로그램으로 ‘아시아 영화의 힘’이라는 섹션에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KBS가 공동으로 제작한 10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8편을 상영했으며, ‘Discovery’와 ‘Sense and Sensibility’ 섹션이 마련되었다. ‘아시아 영화의 힘’은 각 에피소드별로 10개 아시아 국가의 영화 역사를 담고 있으며, 아시아 영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로, 각 에피소드별로 해당 국가 감독의 관점에서 각 나라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봄으로써, 관객들이 아시아 영화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섹션에서는 대만, 이란, 인도, 한국, 말레이지아, 태국, 카자흐스탄, 중국의 에피소드가 상영되었다. 그 외의 섹션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2014년, 2015년에 제작된 최신작에서 1976년에 제작된 마르셀 오퓔스(Marcel Ophüls) 감독의 작품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한국 작품으로는 여성의 이슈나 여성의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낸 다큐들을 소개하는 ‘Sense and Sensibility’ 섹션에서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거미의 땅>이 상영되었다.

 


 

살라야 독에 소개된 작품들 중 마르셀 오퓔스 감독의 (278분)나 <이라크영년 Homeland: Iraq Zero Year>(334분) 등 러닝타임이 상당히 긴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 작품들이 앵콜상영을 할만큼 관객들의 호응이 높고, 꽤 많은 관객들이 이 긴 시간 자리를 지키며 영화를 본다는 점. 지난해에도 3시간짜리 프레드릭 와이즈만의 <내셔널 갤러리>가 상영되었는데, 200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꽉 채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살라야 독의 주요 관객층을 짐작할 수 있다. 경쟁부문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으며, 타이필름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산차이(Sanchai Chotirosseranee)에 따르면, 영화제의 주요 관객은 “씨네필이나 은퇴 후 즐길 거리들을 찾는 노인들, 서구에서 온 외국인들,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타이 필름 아카이브에서는 살라야 독 이외에도 “타이국제단편영화제 Thai Short Film & Video Festival”(무려 올해 20회를 맞는다)와  ‘Silent Film Festival(무성영화제)’도 조직하고 있는데, 관객들 중 감독이 많은 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감독들이 바빠서 그런 것 같다. 유명한 작품의 경우 가끔 보러오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세안 국가의 다큐를 대상으로 하는 경쟁부문

총 상영작이 32편인, 매일 1개관에서 4-5회차 정도의 상영을 하는 소규의 영화제이지만, 경쟁 부문에 상영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다큐멘터리가 상당히 수준이 높고,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다큐들을 태국에 소개하고, 그 프로그램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아시아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주로 중국이나 이란 작품이 많아,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다큐를 접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곳 살라야 독에서 다양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다큐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올해에는 싱가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에서 제작된 다큐와 미얀마, 인도네시아의 작품이 각각 두 편씩 총 8편이 상영되었다. 대부분 60분 이내의 단편 다큐가 대부분이다. 마을을 떠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세대의 일상을 보여주는 베트남 다큐 So Close So Far Ancestral Forest, 미얀마 정치활동가에 대한 인물 다큐 A Political Life, 축구경기장을 방불케하는 수산시장을 담은 유쾌한 단편 The Special One, 1987년 싱가폴의 정치적 고문을 담은 1987 : Untracing the Conspiracy, 군부독재 시절 저항언론활동가로 살아온 아버지를 따라가는 필리핀의 Portraits of Mosquito Press, 트랜스젠더로 이제는 딸이 된 아들을 찾아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네시아 작품 Mommy From Jambi, 말레이시아에서 불러일으킨 논쟁과 공적 여론장의 문제를 코믹하게 짚어보는 Viral, Sial!, 가난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을 관찰적으로 담은 인도네시아의 Mama’s Soil 등이 상영되었다. 


 

 

살라야 독에서 경쟁 부문을 아시아 전체로 넓히지 않고, 동남아시아 국가로만 제한한 이유를 물었다. “태국에는 이들 국가들 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 않다. 다큐 뿐 아니라, 극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중국, 한국의 영화나 서구 영화를 볼 기회는 많아서 그 영화들이 우리에게 친숙한데, 아세안 국가의 다큐나 극영화는 도무지 볼 기회가 없다. 국제경쟁은 어디서든 하니까, 우리는 이 국가의 작품들을 집중해서 소개하고 싶었다. 대신 비경쟁섹션에서 다양한 국가의 작품들을 상영하고 있다.” 올해는 동남아시아에서 총 50편 정도의 다큐가 출품되었는데, 이는 보통 80여편 정도가 출품되는 지난 몇 년에 비하면 좀 줄어든 것이다.

 

태국의 다큐 제작 현황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작품 중 태국에서 제작된 다큐는 <보이는 침묵 Visible Silence>이라는 작품 한 편과 ‘아시아 영화의 힘’ 시리즈 중 태국 영화의 역사를 담은 <스칼라 The Scala> 두 편뿐이다. <보이는 침묵 Visible Silence>은 태국에서 제작되었지만, 미국의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레즈비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고, <스칼라 The Scala>는 태국의 감독인 Aditya Assarat가 만들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와 KBS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보통은 한 해에 한 두 편 정도의 장편 다큐가 만들어지는데, 작년에는 4, 5편의 장편 다큐가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 물론 이 중 몇 편은 한 개나 두 개의 극장에서만 소규모로 개봉한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 제작이 늘고 있는 것인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물었다. “첫째, 다큐가 극장에서 관객들을 끌어들일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다큐를 배급하는 ‘Documentary Club’이라는 회사가 생겼는데, 그 회사가 2년 전쯤 극장에서 꽤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이 다큐가 극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고, TV 채널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투자를 한다. 감독들이 TV 다큐를 만들 수 있도록. 하지만 이제 막 시작인 것 같다.”

극장개봉 다큐나 TV 다큐 이외의 작품은 주로 어떻게 제작되는지도 궁금했다. “단편다큐는 대부분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들지만, 학교 이외에서 다큐를 만들 수 있는 워크숍 등이 많지는 않다. 다큐 제작을 위한 워크숍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제에서도 매년 워크숍을 했는데, 올해는 오기로 했던 해외 게스트가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열지 못했다. 전반적인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태국 감독이 별로 없다. 학생들이 만든 다큐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들이 촬영 대상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2, 3일간 촬영을 하고, 주인공과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 경쟁 섹션에는 태국 작품이 없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처럼 주인공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고, 인터뷰를 해서 만드는 방식을 따라가는 것 같다. 단편영화제에도 다큐멘터리 섹션이 있는데, 태국 다큐가 대학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으로 10편에서 13편 정도 출품된다. 그런데 대부분이 TV 다큐 스타일로 주인공을 따라가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작업을 하는 것이 좀더 일반적인 동남아시아 상황에 비추어 태국은 어떤지도 물었다. 태국도 비슷했다. “<쌀의 노래(Songs of Rice>)를 만들었으며, 함께 경쟁 부문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 우루퐁 락사사드 감독이 거의 유일하게 다큐멘터리만을 계속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도 요즘은 다음 영화 작업으로 극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태국의 영화 산업은 매우 작기 때문에, 극영화도 만들고, 다큐멘터리도 만든다. 영화 제작자들이 상업영화의 스태프로 일하거나, 뮤직비디오 같은 것을 만들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그러면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독립다큐멘터리의 강한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태국의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태동되었는지 물었는데 그는 이 질문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태국에서 다큐가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질문은 아주 흥미롭다. 글쎄, 그 질문을 들었을 때는 원래 영화(Cinema)의 시작이 다큐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웃음) 한국 독립다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에게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긴 했다. 1970년대에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투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감독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그들에 대한 다큐를 만들었다. 그리고 80년대인가, 90년대 골프장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고발한 다큐가 제작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태국의 다큐는 대부분 인류학적인 고찰이나 관찰자적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이다. 사회운동과 연결된 다큐는 많지 않다.”

 

다양한 다큐를 즐기는 관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펀딩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짧은 포럼에서는 타이 필름 아카이브의 찰리다 우아범렁짓(Chalida UABUMRUNGJIT)이 부산국제다큐영화제의 AND 펀드를(그녀는 AND의 선정위원회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필자가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인도네시아에서 Good Pitch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부산영화제 AND에 참여했던 태국의 다큐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태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받기 위해 지원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부산영화제나 DMZ다큐영화제처럼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야 하고, 아직 태국 감독들에게 펀딩을 받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일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았다. “태국에 다큐멘터리에 대한 공적 지원은 부재하다. 있다고 해도 태국 문화를 홍보하는 것일 경우 가능하고,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이거나 안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영화제 등 극장 개봉이든 상업적인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사회운동이나 정부 정책에 반하는 내용의 다큐라면, 당연히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없다.” 

 

  

 

살라야 독은 여전히 다큐멘터리와 영화에 대한 관객수를 증가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단지 관객수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관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즐겼으면 한다. 처음 영화제를 만들 때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관객들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는 관객들의 수준을 끌어올려서, 어떤 영화에도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형식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다.”

살라야 독은 싱가폴, 미얀마, 필리핀의 영화제들과 협력하며 프로그램을 교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오랜 인연을 맺으며 지난해 <다이빙벨>을 타이 관객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아직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아시아 국가들과 그들의 삶을 다큐들을 통해 좀더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도 아시아경쟁 부문 섹션과 DMZ Docs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아시아 다큐와 제작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살라야 독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SalayaDoc/photos_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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