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로 삼투하는 동시대성에 관한 몇 개의 작품
김신 시민에디터
이번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다큐패밀리 섹션에 초대된 미리암 마크(Mirjam Marks)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인 <꿈꾸는 인스타>(The Girl of 672k, 2016)의 주인공은 안네힌이라는 네덜란드의 한 소녀다. 그는 매일 아침 인스타그램의 알림창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안네힌이 거느린 672,000명에 달하는 준-천문학적 숫자의 팔로워들로부터 발신된 샛별처럼 오물거리는 무수한 ‘좋아요’와 댓글들은 어둑어둑한 새벽녘 하늘이 아침햇살로 밝아오기 이전부터 그녀의 단잠을 일찍 일깨운다. 그에게 있어 인스타그램은 광범한 인기를 얻게 해주는 귀중한 네트워크의 보고임과 동시에, 3일마다 새로운 사진 작업물들을 등록하지 않으면 떨어져나갈 팔로워들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수고로움을 강제하는 골치아픈 공간이기도 하다. 짧은 러닝타임동안 <꿈꾸는 인스타>는 인스타그램의 스타로 등극한 안네힌의 일상과 고민들을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꿈꾸는 인스타>가 그저 서양의 청소년, 소녀들의 사적 일상을 담아낸 다큐일 뿐이라면 여타의 미드와 하이틴 영상물을 눈에 익혀온 우리들의 이목을 끌기란 어렵다. 이 작품이 흥미롭다면 그것은 인스타그램이라는 가상의 환경과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변화하는 시지각적 환경에 대한 개략화된 보고서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는 비단 몽환적인 사진 작업을 통해 평판을 널리 알린 인스타그램 스타의 일상과 걱정거리를 담아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스스로가 종종 인스타그램의 1:1 화면비율을 차용하거나 뉴미디어의 화면과 시점을 옮겨오는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적 형식을 도모했다는 점과도 연관될 것이다.
비단 <꿈꾸는 인스타>에 국한된 현상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동하는 시지각적 환경에 직면한 다큐멘터리의 변화는 이번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많은 작품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탄생한 디지털 시네마가 기존의 영화적 질서를 위협한다거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는 예감 자체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논의가 아직까지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전례없는 규모로 증식하고 있는 가상의 스크린, 그리고 그 장소로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생활양식은 끊임없이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에 대한 관점이 제시되기를 고대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서라도 “사유를 촉발하고 형성하는 존재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의식과 변증법적 침투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들뢰즈의 ‘사유의 이미지’ 개념을 요약한 김홍중 교수의 말(김홍중, 「다니엘의 해석학」, 『마음의 사회학』)을 주석삼아, 시대의 새로운 영상적 질서를 농축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적 사례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관점에서 특기할 수 있을법한 영화제의 또 다른 상영작은 ‘아시아 경쟁’ 섹션에 초대된 주 첸(Zhou Chen) 감독의 <라이프 이미테이션>(Life Imitation, 2016)이다. 다종다양한 성별과 신분, 성적지향과 정체성을 가진 <라이프 이미테이션>속 인물들은 광대무변하게 확장된 네트워크를 통해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속에서도 역설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고독을 끌어안고 심리적 소요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이런 증상을 다루면서도 특정한 개인의 심리적 추이나 증상에 초점을 두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피해간다. 그리고 단일한 구성으로 통합되지 않는 다중의 시점과 이야기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의 시점뿐 아니라 영화의 화면 또한 여러 층으로 분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0분이라는 길지않은 러닝타임 동안에도 <라이프 이미테이션>은 실재하는 현실과 모바일 메신저의 스크린, 3D 게임 화면을 다중적으로 배열한 독특한 꼴라주의 구성을 체화한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단순히 동일성의 원칙을 전제하는 선형적인 플롯의 구조에 균열을 내기위한 형식에의 탐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뉴미디어와 물리적 세계를 분주하게 왕래하는 현대인들의 간접화된 생활양식, 혹은 그 생활양식 자체가 세계에 앞서 탐구의 대상으로 부상한 시대를 반영하기위해 채택한 필연적인 구성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라이프 이미테이션>은 모호해져버린 ‘라이프’와 ‘이미테이션’의 경계, 그리고 도처에 산포되어있는 유비쿼터스 스크린의 환경속에서 어느 한 곳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분열적인 심리를 효과적으로 묘사한 동시대적 다큐로 거명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 생각해봤을때, 그런 관점에서 주목할만한 이 독창적인 다큐멘터리의 면모는 시종일관 영화를 관류하는 음울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영화속 인물들이 배회하는 가상현실이라는 장소가 허상으로 바글거리는 거짓의 온상으로 섣불리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오프닝 시퀀스를 비롯해서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이 영화의 모바일 메신저 화면이야말로 인물들의 가장 내밀한 속내가 고스란히 발설되는 장소다.) <아바타>와 <매트릭스>를 위시해서 가상현실을 무자각적으로 찬미하거나 기각했었던 상습적인 주류 영화의 사례들을 떠올려본다면 이는 그 자체로 주목할만한 사태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의 돌발이라는 사태와 복합적인 형식은 영화속 음울한 기운을 빚어내는 일원론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말그대로 변화하는 현실에 발맞추어 생활반경을 넓혀간 인간들의 초상을 담아내는 과정속에서 자연스럽게 차용된 방법론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할 터이다. <라이프 이미테이션>을 그를 통해 최종적으로 투명화된 주체의 자리를 대체한 미디어, 그리고 그것에 연동된 지각의 양식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변화하는 형식이 시대의 우울을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만큼, 역으로 우리는 그 형식의 광범한 영향력을 전유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개진하는 작품들을 물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다큐 초이스’섹션에서 소개될 장편 다큐멘터리 <멸종을 막아라>(Racing Extinction, 2015)는 이에 대한 사례탐구를 제시할 것이다. 감독인 루이 시호요스(Louis Psihoyos)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알리고 있는 과학자들, 예술가들, 환경활동가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이 다큐는 지구가 직면한 “인간에 의한 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징후를 가늠하는 환경 다큐멘터리다. 일견 단순할 것처럼 보이는 이 다큐멘터리를 여타의 생태주의적인 환경 영상물과 구별시켜주는 특성은 인간에 의한 대멸종의 진실을 포착하고 까발리는 과정의 방법론에 있다.
제작진들은 직접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전세계 곳곳의 암시장에 잠복해있는 무분별한 포획의 실태를 고발한다. 고발의 과정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제작진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스크린이다. 그것은 밀렵꾼들의 의심 가득찬 눈길을 피해 암시장을 담아내기 위한 책략으로써 활용되는 초소형 카메라이기도 하며(“이미지야말로 가장 강력한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제작자들은 “No Photography”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암시장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 지역경제와 유착된 야생동물 밀렵의 실태를 맹렬하게 사유한다.), 불법으로 포획한 생물들을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레스토랑앞에서 시위를 벌이기 위해 동원하는 대형 스크린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쩌면 동분서주하는 것은 제작진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에 들리기도 했다가, 셔츠의 단추에 부착되기도 하며, 자유롭게 환경속을 떠돌아다니기도 하는 카메라와 스크린들이라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이 점에서 고프로 카메라를 바다에 방류함으로써 상업화된 어업의 현장을 놀라운 이미지로 담아낸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리바이어던>(2012, Leviathan)과의 혈연관계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또 다시 카메라와 스크린 장비를 들고 이동하며 잔혹한 야생동물 학살을 증언하는 말과 증거들, 그리고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멸종위기 동물들의 이미지들을 메트로폴리스에 투사한 프로젝션 맵핑의 현장이다. 고도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자리한 거대 도시의 마천루를 역으로 스크린으로 활용하며 잊혀진 진실과 아름다움을 말하는 이 저항의 현장보다 뭉클한 장면을 찾을 수 있을까. <멸종을 막아라>는 환경 다큐멘터리임과 동시에 카메라가 무수하게 증식하고 경량화하고 보급화된 옴니스코프의 시대로 잠입한 동시대의 시지각 환경에 대한 풍속화의 역할을 자임한다.

짧은 지면을 통해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았지만 언급한 사례들말고도 우리는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상영작에서 다큐멘터리의 변화를 제시하는 많은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확고한 인간 주체의 시점을 해체하고 그동안 주변화되었던 동물과 객체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하는 <드림박스>(Dream Box, 2017), 사운드와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새로운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을 도모하는 <미지의 해변에서>(2016, On an Unknown Beach)와 <서브웨이 오디세이>(2016, Ulysses in the subway)등은 그에 관한 일부의 예시일 뿐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와 영화의 존재론앞에서 비관이라는 편리한 선택지를 고르는 대신, 새로운 가능성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질문하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 질문의 여지를 제공해주는 흥미로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과거부터 극심한 변동을 겪어왔던 영화에 대한 낙관을 펼쳤던 에르핀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다음과 같은 전언을 인용하며 좌절하지 않을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비록 올더스 헉슬리의 악몽이 미래에 실현되어 맛, 냄새, 촉감이 시청각에 보태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때에도 우리는 사운드와 컬러가 영화에 등장했을 때처럼 이야기할지 모른다. ‘고민은 많아도 괴롭지 않고, 당황스러워도 절망하지는 않는다.’”(에르핀 파노프스키, 「영화의 스타일과 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