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다큐초이스 작품 공개!

2017.08.21

9th 다큐초이스 작품 공개!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지난 8회 영화제부터 도입한 ‘다큐초이스’ 섹션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필드에 부합하는 다큐멘터리를 선정해 관객에게 선보인다. 영화의 제전에 역사학자가, 과학자가, 여성학자 등이 등장한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낄 것은 없다. 다큐초이스는 전문가가 영화를 빌미 삼아 딱딱한 지식을 나열하는 곳도, 권위의 장도 아니다. 영화관에서만큼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고도가 강단의 그것과는 역전되어 있음을 상기해보자. 영화관이야말로 아고라와 꼭 닮았다.

지난 8회 다큐초이스에서는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 싱어송라이터 요조, 미술평론가 임근준a.k.a이정우가 참여하여 각각 역사, 책, 미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관객에게 소개했다. 후지이 다케시는 일본의 전설적인 다큐멘터리인 ‘산리즈카 시리즈’를 통해, 중앙에 대항하는 지역투쟁의 의의를 2016년 한국의 유비 속에서 짚었다. 임근준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술과 영화라는 ‘인접매체’간의 가교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요조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서적의 물성에 관한 애착부터 책의 내용에 관한 애정까지 다양한 책에 대한 사랑을 영화를 통해 전했다.

올해의 다큐초이스는 문화평론가 손희정, 과학 커뮤네케이터 원종우, 작가 은유가 준비한 영화들과 토크가 관객을 기다린다. 손희정은 퀴어 다큐멘터리를, 원종우는 과학이슈를 다룬 작품을, 은유는 여성노동에 관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아래엔 큐레이터들의 선정의 변과 간략한 작품 리뷰를 실었다. 또한 시민에디터들이 진행한 큐레이터들과의 대담도 준비되어 있다.


문화평론가 손희정

2017년, 페미니즘 앞에는 정치세력화와 횡단의 정치라는 과제가 놓여있다. 정치세력화란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개인의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집단화되고, 그렇게 세력화되어 현실 제도에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세력화는 사람들을 묶어낼 수 있는 어떤 공통적인 정체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정체성에 정주하는 것은 우리의 활동 반경을 좁히고 가능성을 한정할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겐 나의 현실을 조건 짓고 있는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들과 접속하면서 그 경계를 넘는, 확장의 전략이 필요하다. ‘나’의 문제를 기반으로 ‘너’와 만나는 정치. 그것이 횡단의 정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치세력화와 횡단의 정치를 이뤄나갈 수 있을까? 다큐초이스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준비되었다. 특히 “(성소수자 시민권은) 나중에”와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합니다”와 함께 열린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의 페미니즘과 퀴어 시민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1990년대 뉴퀴어시네마의 장을 연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1)은 성별이분법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언어로는 규정되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그린다. <폴리티컬 애니멀>(Political Animals, 2016)은 레즈비언 정치인들이 퀴어 시민권을 위해 입법 투쟁을 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마지막으로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7)는 한국의 10대 레즈비언의 삶을 보여준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성적지향 등의 조항 때문에 지독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러나 그들이 반대한 것은 그저 한 장의 조례가 아니라, 절대로 반대할 수 없는 것인 존재 자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 작품이 직조해내는 논쟁의 장에서 더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

<파리는 불타고 있다>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0)

퀴어 영화 역사 상 가장 논쟁적인 작업이자 뉴퀴어시네마의 장을 열어젖힌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파리는 불타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 뉴욕 볼컬처(ball culture)의 심장부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다.

볼컬처란 LGBT 커뮤니티의 하위문화 중 하나로, 상금과 트로피를 놓고 각 ‘하우스(house)’들의 멤버들이 드랙을 하거나 춤을 추면서 서로 경연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이 경연장에서는 게이, 여장 남자, 트랜스젠더 등 성별이원제 및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의 언어로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퀴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기질, 춤 실력, 우아한 태도 등을 뽐낸다.

감독 제니 리빙스톤은 6년 동안 이 불온한 존재들의 화려한 카니발과 그 이면에 놓여있는 억압과 배제의 현실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경연과 인터뷰, 그리고 경연장 밖에서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 과정에서 다큐는 볼컬처라는 문화적 실천뿐만 아니라, 그 실천을 이끄는 주체인 퀴어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인종과 계급,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묻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이 작품은 198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동성애혐오, 빈곤 등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에스노그라피가 된다. 매일 매일 차별과 혐오, 그리고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이 다큐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폴리티컬 애니멀즈>

<폴리티컬 애니멀>(Political animals, 2016)

“오늘 아침 대법원은 미국 헌법이 결혼의 평등을 보장함을 승인했습니다. 이야말로 전 국민이 하나의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해 온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에 대한 지지의 표명입니다. 사랑은 사랑이란 것 말이죠(love is love).”

2015년 동성결혼 합헌 선언에 따른 오바마의 연설 내용이다. <폴리티컬 애니멀즈>는 이 연설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 “사람들은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역사적 진보들이 그저 한순간에 이룩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그 진보들을 이룩하기 위해 이어져 온 지난한 투쟁의 기록을 펼쳐놓는다. 그 기록의 가운데에는 네 명의 레즈비언 정치인들이 있다. 1990년대 그들은 학생들이 성적지향 및 성정체성에 따라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학대당하지 않도록 하는 반차별법 제정을 위해 힘썼다. 덕분에 1999년, 드디어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이어서 그들은 동성파트너와 그 가족이 이성파트너로 구성된 가족과 같은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법제정에 나선다. 이런 투쟁의 결과들이 모여 역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변화는 한 순간에 오지 않는다. 지워진 목소리가 기어코 들리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들이 집단을 이루어 정치 세력화될 때, 그리고 그 세력화가 제도적 진보를 이루어낼 때. 변화는 그 시간의 중첩 속에서 비로소 가시화된다. <폴리티컬 애니멀즈>는 그 가슴 뛰는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

<Out –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7)

한국 퀴어 영화 계보 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다큐멘터리.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미디어 액티비스트 그룹 여성영상집단 움이 10대 퀴어인 천재, 초이, 꼬마의 셀프 카메라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중학생 때 여자 친구와 연애를 하다가 학교에서 ‘이반검열’을 당했던 천재는 고등학생이 되어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된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천재의 퀴어 정체성을 부정하고 두 번째 다큐 작업에 반대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간다. 초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웃팅을 당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는 ‘특별한 여자 친구’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탐색 중이지만, 이 사회는 그 탐색 과정조차 ‘이상하고 더러운 것’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꼬마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을 안고 있다. 중학교 때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그는 퀴어 인권활동가의 삶을 꿈꾸고, 그런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자립을 계획한다.

10대의 (성적) 주체성을 부정하고 퀴어의 목소리를 가장 불온한 것으로 여기는 2017년 대한민국. <Out>은 10대 퀴어의 삶을 통해 성적인 정체성이란 생물학이나 욕망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하게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문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10년 전 작품이지만 <Out>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가장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원종우

모름지기 과학 다큐멘터리라면 화려한 그래픽과 장대한 스케일로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 여겨지곤 한다. 실제로 그 유명한 <코스모스>를 비롯해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영향받아 온 과학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이 이 영역에 있었을 것이다. 거대 프로덕션이나 방송사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세계 시장을 상대로 만든 대작들이다.

하지만 모든 다른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과학 다큐멘터리 역시 그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낼 수 있다. 과학이라는 주제가 커버하는 영역의 넓이와 깊이가 워낙 방대할뿐더러 그 속에는 단지 과학적 지식이나 정보뿐 아니라 과학자의 삶이나 과학기술의 영향 하에서 벌어지는 밝고 어두운 사회 현상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연관된 다양한 인간의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Alive Inside, 2016), <깡패 같은 제약회사>(Prescription Thugs, 2015), <멸종을 막아라>(Racing Extinction, 2015)의 세 작품은 바로 그런, 과학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을 드러내는 크고 작은 다큐멘터리들이다. 약물과 관련된 내밀한 개인적 경험의 토로와 사회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의학적 노력의 감동, 다른 종의 멸종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발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발 등을 통해 이 작품들은 지식과 정보를 매개로 우리 속에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의 경험을 끌어낸다.

과학기술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며 그저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풀기 위한 객관적인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고 만들고 사용하는 우리 인간들이 그런 가치들을 과학에 심는다. 그렇기에, 과학기술의 힘이 강해 질 수록 인간은 그보다 더 성숙해야 한다.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Alive Inside, 2016)

기억을 잃어 간다는 것, 평생에 걸친 경험과 감정, 생각들이 하나둘씩 흩어져 가며 급기야 자기 자신을 잃어 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또 어떤 고통일까. 현대 과학은 아직 치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그저 수용된 상태로만 방치되어 있다.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음악을 통해 기억과 자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루이 암스트롱의 옛 노래를 들은 아흔 살의 노인이 곡의 제목을 떠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녀의 생일에 어머니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듣지 못하게 막은 것, 그리고 2차대전 시기에 포트 잭슨에서 일하게 된 것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다시 기억해 내는 놀라운 모습은 음악 속에 들어있는 기억과 감정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우리가 듣던 음악은 우리 삶의 시대와 챕터들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아하는 음악 속에는 각자의 유니크한 기억과 경험, 감정, 그리고 스토리들이 녹아 있다. 기억을 잃고 자신을 잃어가는 이들, 약물로도 호전되지 않는 사람들이 오래전 듣던 음악을 통해 과거의 고리들을 다시 이어간다. 작품을 통해 마이클 마이클 로사토-베넷 감독은 비영리 재단 ‘뮤직 앤 메모리’(Music & Memory)가 펼치고 있는 이런 노력을 찾아가며 치매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의 실례의 소개는 물론,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느끼고 생각하도록 이끈다.

<깡패같은 제약회사>

<깡패같은 제약회사>(Prescription Thugs, 2015)

전작 <슈퍼히어로의 진실>(2008)에서 감독 크리스 벨은 프로레슬러 등 스포츠 영웅들을 숭배하던 자신과 형제들의 스테로이드 남용 사례에 고백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었다. 이어 그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는 <깡패같은 제약회사>를 통해 벨 감독은 스테로이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처방약의 남용과 중독의 진실을 파헤친다.

미국에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등 다양한 종류의 위험한 처방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익 추구 위주의 의료 및 의약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 덫에 걸리면 합법적인 구조 내에서 마약 중독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며 실제로 그런 일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작품은 보여주는데, 이는 처방약 남용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슈퍼히어로의 진실>의 출연자이자 WWE 프로레슬러 출신 친형 마이크 벨의 비극이 고리가 되어 감독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슬로건 하에서 벌어진 불법 마약 소탕 작전의 그늘 속에서, 철저하게 합법적이지만 실제로는 마약 밀매보다도 훨씬 거대한 탐욕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처방약 세계의 비윤리성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작품이 바로 <깡패같은 제약회사>다. 특히 크리스 벨 감독은 막판 놀라운 고백을 통해 면밀한 이성적 자각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조차도 처방약 남용의 유혹에 굴복할 수 있다는 현실을 관객들에게 실감 나고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멸종을 막아라>

<멸종을 막아라>(Racing Extinction, 2015)

‘인류세’라는 시대 구분이나 ‘여섯 번째 멸종’ 같은 표현이 낯설다면 현재 인류가 벌이고 있는 대멸종의 학살에 대해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모든 생물은 멸종의 길을 걷게 마련이고 이는 생태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인해 그 자연스러운 현상이 수천 배 빨라지고 있다면 어떨까.

<멸종을 막아라>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물론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다. 그러나 감독 루이 시호요스와 그의 동료들은 실로 다양한 각도에서 이에 접근하고 또 표현했고, 그 점에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 상어의 고기와 뼈를 얻기 위한 비인도적인 만행들과 그것들이 거래되는 현장에 잠입해 탐사보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한편으로는 대양을 가로질러 대화하는 고래의 이야기들을 녹음해 풀어낸 과학기술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초래하는 기후 변화의 실상을 알려주면서 지금의 우리가 왜 생태계 전체에 위험한 존재인지 총체적으로 느끼도록 이끈다.

멸종이 진행되는 동안에 그것을 알아챘던 생물종은 없었다. 수백만 년의 긴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했거니와, 그것을 자각할 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멸종을 일으킬 힘과 그것을 인식하고 막을 능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런 사실을 환기시킬 뿐 아니라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거리 영상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것이 이 다큐의 또 하나 중요한 축이자 볼거리다.


작가 은유

세 편의 작품은 여성 노동자의 탄생, 예속에서 자유로 이행하는 싸움, 내가 나로 사는 존재 회복의 여정을 각각 기록했다. 이들 주인공은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들인데 나에겐 익숙한 사람들이다. 서울여상 3학년 교실 풍경을 담은 <나의 교실>(Dear my frineds, 2011)은 실제로 내 모교의 이야기다. 꽉 끼는 정장 치마가 어색한 주인공 진수를 보며 일찍 어른의 옷을 입고 뒤뚱거렸던 열아홉의 나를 보았다. 낮아진 취업률에 외모 노동까지 강요받는 삭막한 달라진 현실에 놀랐고, 오빠는 남자니까 대학에 가야 한다는 딸로서 희생을 내면화한 대사는 여전해 안타까웠다. 서글퍼 눈물지을지언정 기죽지 않았던 그녀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난 여상 졸업 후 5년간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전업주부로 10년을 살았다. 우연히 집필 노동자가 됐으나 그 일이 아니었다면 <외박>(Weabak, 2009)의 그녀들처럼 마트 계산원으로 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을 종이컵처럼 쓰고 버리는 사측에 분노해 그녀들처럼 파업에 동참했을 거다. 구호와 단식이 전부가 아닌 춤과 노래, 웃음과 이야기, 음식이 넘치는 싸움을 거치면서 나도 그녀들처럼 가정에 속박된 틀을 깨고 본연의 나를 찾을 수 있었을까.

나는 살림과 육아, 그리고 집필노동으로 존재가 납작해지려 할 때마다 파업은 못 하고 시를 읽었다. <시 읽는 시간>(Time to Read Poems, 2016)에 나오는 출판노동자, 영상기사, 일러스트레이터처럼 자본의 굉음과 가부장제의 명령에 묻혔던 내 불안과 슬픔의 목소리를 쓰고 말하면서 복구해 나갔다. 어느 날 노동자가 되고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자기 언어와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 존재 회복의 계기를 찾는 이들과 세 작품을 나누고 싶다.

<나의 교실>

<나의 교실>(Dear My Friends, 2011)

한국사회에서 ‘고3’은 하나의 이미지로 박제됐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인문계고 아이들, 오토바이를 타고 입실하는 수험생의 모습. 그렇지 않은 고3도 있다. 입시가 아닌 면접 준비에 한창인 특성화고등학교 아이들이다. <나의 교실>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감독이 자신의 모교를 찾아가 후배들의 교실 풍경, 취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고민과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주인공 진수는 “오빠는 남자니까 대학가야 한다”고 무심하게 말한다. 난 왜 자꾸 서류 심사에 떨어질까 낙담하자 “못생겨서 그렇다”는 교사의 말을 예사롭게 듣는다. 코를 높이는 성형수술을 단행하고 가까스로 입사한 회사에서는 고졸자의 서러움에 눈물짓기도 한다. 꽉 끼는 정장 치마와 하이힐을 신고 뒤뚱거리던 신입사원은, 대학에 들어간 고교 동창의 축제에서 자기 또래들의 발랄한 옷차림과 표정, 자유분방한 공기에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가부장제의 토양에서 자란 그녀들은 오빠를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여자에게 강요된 외모 노동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고졸로서 겪는 차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입사하고 싶다”며 눈물을 삼킨다. 카메라에 비친 스무 살 비대학생 사무직 여성 노동자의 모습은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자연스럽게 하나씩 드러낸다. 서글플지언정 비참하진 않고 괜찮지는 않지만, 그 괜찮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시선은 당당하다.

<외박>

<외박>(Wea Bak: Stayed Out Over Night?, 2009)

기혼여성들은 외출이나 출근 준비가 길다. 식구들 밥 차리고 집안 정리를 해놓고 나와야해서다. 그런데 외출이 아닌 외박이라면? 그것도 아주 특별한. 2007년 6월 30일 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50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상암 월드컵 홈에버 매장 계산대를 점거했다. 사측의 무자비한 계약해지에 대해 그녀들은 분노하고, 1박 2일을 매장 점거는 510일간의 긴 파업으로 이어진다.

예상보다 길어진 외박,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들의 파업은 즐겁다. 뉴스가 보여주는 투쟁 조끼 입고 굵은 팔뚝을 추켜올리는 구호와 선동의 과격함으로 수렴되지 않으며 노래와 춤, 이야기, 그리고 음식이 넘친다. 파업 이전 하루종일 말 한마디 못하고 기계처럼 서서 일만 하던 그 장소에서 그녀들은 처음으로 동료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나누고 권리를 주장한다.

집안일 하는 ‘사적 존재’로서 공적 장소를 허락받지 못한 여성들은 ‘외박’을 통해 집안에 갇혀 있던 자신을 보게 되고, 용돈 벌이나 애들 학원비 버는 일로 축소되었던 여성노동자의 권리에 눈뜬다. “아줌마라고 하지 마세요!”라며 남성 동지들에게 외치는 모습은 <외박>의 가장 멋진 장면이다. 힘의 논리가 아닌 관계의 윤리로 풀어가는 파업. 여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접시가 깨지는데, 그것은 억압된 말의 폭발이 이뤄낸 남성 중심 사회의 파열음으로 울림을 남긴다.

<시 읽는 시간>

<시 읽는 시간>(Time to Read Poems, 2016)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최승자 시인의 시구로 이 영화를 표현하고 싶다. <시를 읽는 시간>에는 출판사를 그만 둔 30대 여성, 해고자 신세가 된 노동자, 공황 장애를 앓은 50대 남자, 수입이 불안정한 일러스트레이터, 차별 받는 여성으로서 고통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여성이 출연한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받았던 상처와 비참, 불안과 초조를 가만가만 이야기한다.

“직원의 위치는 바둑돌과 같아서 두는 대로 간다”고 말하는 남자, “저는 제가 아름답거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아픔을 완벽하진 않지만 알려고 노력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여자의 그런 말들은, 그대로 시다. 찬찬히 지나온 삶을 복구하는 자기서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가슴을 두드리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가난과 해고와 실직과 배제에 떠밀려온 다섯명이 이 세상의 속도에 떠밀리거나 경쟁에 질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길들여진 타자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로 삶의 영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시집을 꺼내어 시를 낭독한다. 자본의 굉음에 묻혀 집중하기 어려웠던 사람의 목소리가 감미롭고 그 육성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기에 이르니, 시를 읽는 시간은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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