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가 손희정이 추천한 세 작품을 만나다

2017.08.17

다큐초이스 큐레이터 손희정
문화평론가 손희정이 추천한 세 작품을 만나다

김신 시민에디터

 

문화 평론가인 손희정은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평론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페미니스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일을 하고 영화를 봐오며 세계와 문화를 보는 눈을 익혔다 고백한 그는 현재에도 다양한 영화제와 문화공동체를 방문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강연을 해오며 문화와 영화의 비판적인 읽기를 실행해오고 있다. 그 과정속에서 페미니즘이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그가 대면한 세계의 굴곡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해석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손희정에게 있어 문화와 영화란 단지 가부장제를 배양하는 온상으로서 끊임없이 가격해야할 비판의 대상일 뿐일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조금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를 자주 소개하는 그에게 있어 영화란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끔 해주는 동력의 서식지, 상상력의 불씨를 간직한 가능성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세 편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이번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다큐초이스’ 섹션을 방문한다. 흥미롭게도,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져있는 그는 추천한 세 작품들의 목록을 모두 퀴어 다큐멘터리들로 채웠다. 어느 때보다 사회적 소수자들에 관한 의제가 가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퀴어 시네마를 선택하고자 한 손희정의 생각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들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을 작품들의 얼굴이 궁금하다.

 

Q1. 얼마 전에 첫 단독 저서인 페미니즘 리부트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집필 활동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제와 인문학 플랫폼을 오고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손희정 많이 했다. 얼마전까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포럼을 기획하기도 했었고, 부천영화제에서도 ‘무서운 여자들 : 괴물 혹은 악녀들’이라는 섹션에서 강연을 맡았었다. 아마도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올해 영화제에서의 마지막 활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Q2. 추천해주신 세 작품은 동성애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지금까지 손희정 선생님께서 여성주의뿐 아니라 소수자 정치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오셨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으신만큼, 이러한 결단은 개연성있는 추측을 빗겨가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 작품들을 추천해야 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나 배경이 궁금하다.

손희정 처음에 DMZ국제다큐영화제측에서 영화들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당시에는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져있는 만큼, 여성에 대한 이슈들을 담은 작품들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선정을 마감할 시기가 가까워올 즈음에, 곳곳에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던 행간속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무엇을 얘기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되었다. 선정을 재고해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이란 생물학적 여성들만을 각광하는 학문이 아닌만큼, 당시에 논란을 불러모으고 있던 차별금지법 제정, 군형법 92조 6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시민결합과 동반자법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의제들에 대해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들에 대해 생각해보던 중 퀴어 다큐들을 소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Q3. 각 작품들을 고르신 이유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손희정 첫 번째로 고른 작품은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0)이다. 이 작품의 경우는 퀴어 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공개되었던 90년대 당시 영미권에서 매우 급진적인 퀴어 의제를 던지기 시작하던 ‘뉴퀴어시네마’ 라는 영화적 흐름의 대표작이다. 뉴퀴어시네마의 영화들은 이전까지의 퀴어 영화들이 동성애자들을 묘사하는 얼마간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사회질서안에 포섭되지 않고도 퀴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들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파리 이즈 버닝>은 뉴욕 드래그 퀸(Drag queen, 여장을 한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들이 무도회에서 경연을 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게이도 있고, 드래그 퀸도 있고, 여장남자도 있고 트랜스젠더 여성등 다양한 퀴어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학적이나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급진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는 작품이기에 선정을 했다. 마침 특정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의 의제안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려고 하는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 시대에, 왜 페미니즘이 성소수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0)

그 다음으로 선정한 <폴리티컬 애니멀>(Political animals, 2016)은 최근에 나온 다큐멘터리이다. 세 명의 레즈비언 국회의원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법을 만드는 과정들을 담은 작품이다. 그 과정속에서 법을 만드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좌절을 겪기도 하고, “이러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말하는 호모포비아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는, 마치 국내의 상황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10년, 20년 전에 먼저 레즈비언 정치인들이 어떻게 법을 바꿔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 페미니즘에서 가장 시급한 의제중 하나는 여성의 시민권 획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성들의 언어가 지속적으로 고함, 비명과 같은 범주로만 논의되는 현상에 대한 답답함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항상 법에 기입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물론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겠지만 제도의 외부를 향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제도 안에서 제도의 언어로 법을 다시 쓰는 운동도 필요하다. 시민권을 획득해서 민주주의의 언어로 말을 하는 것 말이다. 물론 트위터같은 곳에서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는 등, 개인적인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개인의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세력화될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을 구성해야 할텐데, <폴리티컬 애니멀>은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다.

 

<폴리티컬 애니멀>(Political animals, 2016)

Q4. 말씀하셨듯이 <폴리티컬 애니멀>은 제도권내에서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두 작품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손희정 어쩌면 그런 점에서 볼 때 토론거리를 제공해준다기보다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과 같은 승리의 경험이 특별히 레즈비언의 얼굴로 나타났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퀴어운동이 게이운동으로만 호도되기도 하고, 또 게이들보다 레즈비언들이 커밍아웃을 하기가 더 힘든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이 영화가 지니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정치세력화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에 <폴리티컬 애니멀>을 선정했다.

세 번째 작품인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8 이하 <Out>)는 올해 인디포럼에서도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같은 감독인 ‘여성영상집단 움’소속의 이영 감독이 제작한 <불온한 당신>(Troublers, 2017)이 최근에 공개되면서 묶여서 상영되기도 했었다. <Out>은 10대 레즈비언들이 어떻게 이반검열을 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호모포비아 운동이 본격화되었던 때는 대략적으로 2008년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저지되고 학생인권조례가 반대되는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래에도 화제가 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와 연관지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이 작품을 고르게 되었다.

Q5. 세 작품을 선택하시면서 각각의 작품들 나름대로 특별한 정치적인 의도를 담아내신 듯 하다.

손희정 그렇다. 그리고 이런 얘기들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얼마 전에 문재인 정권에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의제는 누락되어있었다. 젠더폭력법을 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포함되어 있었긴 하다. 물론 이는 매우 중요한 성취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정부와 경합하고 교섭하는 과정속에서 무엇을 얻은 동시에 무엇을 얻지 못했는가’에 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래디컬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선정했다면 더 많은 호응을 불러모았을 수도 있을 테지만 최종적으로 퀴어 다큐멘터리들을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Q6. 확실히 여성의제를 가져오는 와중에 퀴어 의제를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손희정 그렇다. 어떻게 해야할지 확실한 답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런 자리가 마련되는 계기를 통해 논의가 더 진전되면 좋을 것 같다.

Q7. 영화계에서도 페미니즘에 비해 퀴어 소재는 아직 많이 가시화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페미니즘 영화들도 주류 영화계의 외곽에서 밀려나 있지만, 이제 페미니즘 영화는 마블이나 매드맥스등 거대 프랜차이즈나 주류 영화들을 경유하는 방식으로도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를 다양화하고 중층화시키는 경향이 엿보인다. 반면에 퀴어시네마들은 아직까지도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 논의가 축소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가령 올해 초에 오스카에서 수상했던 <문라이트>(Moonlight, 2017)가 소재를 제외하고는 남는게 없는 작품이라는 등, 퀴어시네마들은 논의가 충분히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고 소재에 대한 단편적인 몰이해에 교착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손희정 <문라이트>를 아직 보지는 못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논란도 추가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이 영화가 동성애에 관한 영화인가, 아니면 흑인에 관한 영화인가. 이런 질문을 하던 어떤 이들은 <문라이트>를 동성애에 관한 영화로 볼 수 없다면서, 이것은 미국에서 ‘흑인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발언들을 보면서 작년에 <캐롤>(Carol, 2016)을 둘러싼 논란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에도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보편적인 틀에 특수성을 끼워맞추려는 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7)

Q8. 세 작품중 <Out: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는 유일한 국내 다큐멘터리다. 국내의 퀴어 시네마들중에서 각별히 이 작품을 추천하신 이유가 있을까.

손희정 우선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학생인권조례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고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Out>을 제작한 ‘여성영상집단 움’이 맨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은 <거북이 시스터즈>(Turtle Sisters, 2002)이고, 이후에 이들은 <우리들은 정의파다>(We are not defeated, 2006)라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 집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퀴어에 관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오던 집단이기도 했다. 최근에 공개된 <불온한 당신>도 이들의 작품이다. <Out>을 고른 데에는 이 여성영상집단 움에 주목해보고 싶은 의도도 있는 것 같다. <Out>은 국내 퀴어시네마의 역사적 계보안에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많은 고민을 한 작품이다. 10대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Q9. 퀴어 영화들은 아직까지는 메인 스트림에서 활동하는 주류 영화 감독들보다는 말씀하신 여성영상집단 움처럼 집단에서 제작되는 사례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손희정 여기에서도 짚고 넘어갈 수 있는 점이 있는 것 같다. <파리 이즈 버닝>을 제외한 두 작품은 레즈비언들을 담은 작품이다. 물론 <파리 이즈 버닝> 또한 정확하게 게이 씬만을 담고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레즈비언들을 담은 작품들을 더 고른 이유는 레즈비언들이 게이들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비가시화 되어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문득 생각난건데, 사실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퀴어 다큐멘터리중에 이동하 감독의 <위켄즈>(Weekends, 2016)가 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점은 이들의 얼굴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30명의 합창단의 얼굴이 거의 다 모자이크 처리되어있지 않다. 반면 <Out>의 여성 레즈비언들은 다 가면을 쓰고 나왔어야 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 (비)가시성의 문제는 게이들보다 레즈비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삶을 꾸려나가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화두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Q10. <Out> 연작이 제작된 지 이제 10년이 지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성소수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지가 궁금하다.

손희정 사실 제도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전혀 나아진 면이 없고, 혐오에 노출되었다는 측면에서는 더 악화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10년전에는 더욱 더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박해를 받는 사례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게 좋다는게 아니라(웃음) 지금 호모포비아들이 이렇게까지 더 혐오의 정동을 내보이고 있는데에는 국내의 퀴어운동이 굉장히 잘해와서 가시성을 획득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이들이 너무 잘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이 가열된 면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상황이 안좋아진 측면도 있겠지만, 운동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위치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조직력이 더 견고해지고, 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비교적 잘 조성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되어서, 최근 10년동안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중 하나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집단에서 시청을 점거했었던 사건(2014)이었다. 최근에 열렸던 퀴어축제의 규모가 8만명으로 역대 최대였다는 사실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냐”, 라고 묻는다면 달라진 것 같지만 변화되지 않은 것, 달라졌지만 변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 해보면서 <Out>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이런 기획이 진행된다면 가면을 쓰지 않고도 촬영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Q11. 이 영화들이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어떤 반응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시는지

손희정 제 생각에 다큐멘터리란 스크린의 단절면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스크린을 흘러넘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관객과 만나게 되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Out>이 처음 공개되었던 10년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프리미어 상영을 통해 <Out>이 여성영화제에서 최대 규모의 상영관에서 상영이 되고, 상영이 끝난 후에 GV가 진행되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소녀들이 영화에서 마스크를 쓴 것처럼 마스크를 쓰고 GV 현장에 등장했다. 그런데 여성영상집단 움이 “왜 이 소녀들만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냐”라는 문제의식속에서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에게도 전부 다 가면을 나눠주는 행사를 기획했었다. 당시에 나는 여성영화제에서 프로그램팀장으로 일하면서 해당 GV를 코디네이팅하고 있었기에 현장을 기억하는데,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진행되던 GV가 끝나갈 무렵에 모더레이터가 “마지막 질문을 받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자 한 명의 관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소녀중 천재(가명)의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마스크를 벗으시면서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이 나의 딸이며, 나는 딸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시자 GV를 진행하던 천재가 어머니를 앞으로 부르고 둘은 포옹을 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도 퀴어의 어머니로서 커밍아웃을 하셨으니 나도 얼굴을 가리고 있을 수 없다”고 가면을 벗었다. 이어서 모두가 가면을 벗어던지고 현장이 울음바다로 변하던 그 순간. 그 순간의 감흥을 10년이 지나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다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통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울음의 현장속에서 움직인 누군가의 마음은 극장 문을 열고 나간 이후에도 어딘가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다큐이기에 이 작품들을 여러분들과 같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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