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다큐멘터리 세편으로 본 ‘자기 이야기의 힘’

2017.06.17

나의 삶과 너의 삶 사이에서:
사적 다큐멘터리 세편으로 본 ‘자기 이야기의 힘’

도상희 시민에디터

 

“천 원짜리 우유를 집으면서도 나는 망설였고,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8년째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생계를 잇는 감독 윤가현의 내레이션에 자신도 모르게 몇몇 관객이 고개를 끄덕인다. 스크린 속에선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피켓들이 일렁인다. 시급 6300원(촬영 당시)만으로는 사람답게 살기 힘들다고 외치는 ‘나’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가현이들>(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이다.

영화<가현이들> 스틸컷

<가현이들>은 ‘연대를 통해 알바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자’는 공적 이슈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사회적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청년실업해결이나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의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 자신과 주변의 또 다른 ‘가현이들’의 일상을 담담히 담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는 지극히 사적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관객들에게 ‘사적 다큐멘터리’[주1]로서 쉽게 다가간다. “가장 개인적인 것(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이란 68혁명의 구호처럼 말이다.

<가현이들>은 단순히 알바노조와 알바연대의 집회 현장과 뉴스 클립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이 겪은 아르바이트의 고단함(“나도 그랬다. 알바를 하면서 수도 없이 해고를 당했다. 전화, 문자 한통으로 ‘나오지 마’ 하면 다른 알바를 찾아야만 했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감선생님의 훈화말씀처럼 당위적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들이 아닌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만 원짜리 고기 뷔페에 맘 편히 갈 수 없다”는 한 사람의 진솔함에 이끌린다.

영화 속에서 감독 자신을 포함, 세 명의 가현이가 뱉는 말들은 스크린 앞의 수많은 알바노동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계속 서서 일하던 게 잘못된 거였구나!’ 알게 되고, 영화관을 나가서 누군가는 알바노동자들의 연대에 들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2010년경 시작된 ‘나’의 고민은 2017년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최저임금 만원’으로 아로새겨질 만큼 나아갔다.

그 시작은 사회 속에서 불안한 개인이었다. 그가 카메라를 직접 들었고 1인칭 시점에서 거짓 없이 바라본 자신이 속한 삶을 보여주었다. 이때에 관객들은 진심만이 줄 수 있는 힘에 끌려들어간다. 감독 자신이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담담한 고백에는 선입견이나 어설픈 동정이 없다.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모순적으로 가장 객관적이기에 이 왜곡 없는 빛은 당신의 마음속으로 곧게 뻗어 들어간다.

영화<9와 0사이> 스틸컷

여기, 곧 스물을 앞둔 열아홉 김수민이 자신의 빨래를 널며 당신에게 말을 건다. <가현이들>이 수많은 10대 ‘수민이들’이 곧 겪게 될 아르바이트 노동의 현실을 비추었다면, <9와 0사이>(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는 김수민이라는 한 십대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이다. 감독은 대학에 가지 않기로 선택한 뒤, 어른으로 독립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자신이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은 점차 넓어져간다. 관객은 그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른 인문학 책의 제목을 구경하고, 아르바이트를 함께하며, 밀양 송전탑 현장에 가 할머니의 울컥함을 듣고, 민중총궐기 깃발 앞에도 서 본다.

민중총궐기에 나갔다.
청년이 암울한 시대에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내 몫을 하고 싶었다
.”

이 과정에서 일기처럼 시작된 이러한 감독의 독백은 적극적으로 사회 변화를 말하고 있진 않다. 단지 자신의 고민을 성실하게 돌아보았을 뿐이지만 관객들, 특히 이제 집 안에서 ‘어른’으로 나가는 문 앞에 선 10대들의 마음속에 닿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제 대학가면 알바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지?’, ‘이제 부모님 간섭 없이 집회에도 나가보고 싶은데 조금 무섭긴 하다.’ 같은 고민들은 한 타인의 이야기로부터 촉발될 수 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deBeauvoir)가 그녀의 자전 소설인 『계약결혼』을 왜 썼는지에 대해 “이런 문제는 본인에게 밖에는 관계가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인간이건 아니건, 한 인간이 성실하게 자기를 노출 시킬 때 모든 사람이 많든 적든 거기에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의 인생의 여기저기를 비춰보지 않고는 자기의 인생을 비춰내기는 불가능한 것이다.”[주2]라고 썼듯 말이다.

영화<야근대신 뜨개질> 스틸컷 (출처: 네이버)

10대와 20대의 아르바이트를 지나 사회적 기업에 다니는 박소현의 <야근대신 뜨개질>(제7회 DMZ다큐영화제) 또한 감독 자신과 동료들의 일상과 직장생활을 비춰낸다. ‘사회적 기업인데 왜 주말까지 출근하고 매일 야근일까?’ 라는 이들의 고민은 촬영 대상이 곧 제작자 자신이거나 매우 친밀한 지인들인 사적 다큐멘터리의 특성[주3] 덕분에 제작자와 대상이 경계나 긴장 없이 편하게 일상을 이어나며, 이로써 설득력을 지닌다. 나나와 주이는 회사에서 이를 닦으며, “나는 이제 야근하니까 이 닦아야지.”, “난 오늘은 야근 없지만 집 가면 너무 피곤해서 미리 닦고 가는 거야.” 같은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극이나 사회적 다큐멘터리에서는 붙잡기 힘든, 공감을 부르는 개인의 기록은 야근의 문제라는 보편성을 띄고 관객의 마음에 스민다.

<가현이들>, <9와 0사이>, <야근대신 뜨개질>. 자신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 이 세 영화들은 진솔한 동시에 현명하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유효한 말하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세 영화 모두에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9와 0사이>와 <야근대신 뜨개질>에 밀양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사회 안전망이 해질 대로 해진 지금에 영화를 보는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하는 일이 올바른지 알지 못해서 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 저녁의 아르바이트가 없다면 다음 달 월세도 없으니까, 야근이 눈앞에 있으니까, 광장이 무섭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야근대신 뜨개질>에서 나나의 이 말은 당위나 계몽이 아니기에 어떤 공감이나 결심을 준다.

“귀촌하고 싶던 후보지가 밀양이었어요.
그런 사건(송전탑)이 터지면서 안전한 곳이 없겠구나, 생각했고요.
강정을 보면서도. 도시에선 용산을 보면서도. 용기가 없어 집회현장에 가보지 못했고
그럴 때 마음이 안 좋긴 하지만, 저기 가지 못하는 내가 참 찌질하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도시에서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다음에 너희랑 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하면서
친구들과 농활대를 조직해보면 어떨까?이런 이야기들을 하고요.”

이어 같은 회사의 동료 ‘빽’은 세월호 집회에 가지고 갈 직물을 만지며 이렇게 묻는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자신은 사회적인 문제(세월호)가 발생했을 때 큰 사회가 아니라 작게나마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를 고민했다며 말이다. 이 질문은 사실 세 다큐를 시작하게 한 공통된 질문인지도 모른다. 감독 한 명의 불안에서 카메라는 시작되었지만 결국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고민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고민으로 이어질 것임을 그들은 잘 알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카메라를 놓으면 누구라도,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이 그들로 하여금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 감독은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손을 잡는 것은 당신의 몫이지만.



[주1]  
사적다큐멘터리의 개념 : 제작자 자신을 포함, 제작자의 가족이나 제작자와 일상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이 화면 내에 존재하며 이들을 개별 혹은 통합형태의 주제로 하여 주관적으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 오태돈, 「일상의 발견, 그 안에서의 사적(私的) 다큐멘터리 연구」, 2006, 4p


[주2] 
SimonedeBeauvoir.LaForcedeL’age.이석봉 역.1981.계약결혼.서울:民藝社,303쪽.


[주3] 
사적 다큐멘터리의 즉흥성 : 오태돈, 「일상의 발견, 그 안에서의 사적(私的) 다큐멘터리 연구」, 2006, 15-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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